에세이

일용할 양식 일용할 은혜

해처럼달처럼 2009. 11. 8. 09:58

 

 

우리는 종종 주변에서 갑작스럽게 큰 돈을 갖게 되어 이전에 맛보지 못하던 세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새로운 세계에의 삶이 오랫동안 잘 지속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대부분인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노력하고 땀 흘린만큼 얻은 댓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땀흘리지 아니하고 얻어진 것은 그만큼 그에 대한 애착과 귀중성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애착과 귀중성이 없다보니 마구 써서 소비하게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다시 말하면 그날의 양식 구할 것을 기도하라 하셨습니다.(마 6:11) 그런데 지금 우리들 문제는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내일과 모레, 그리고 1년 후 10년 후 아니 자녀들 장래의 것까지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식도 지혜도 부귀도 권세도 적당하게 있을 때가 보기 좋습니다. 너무 지나치면 교만 방자해지고 상대방은 아예 눈 안에 들어오지도 않게 되지요.

우리가 먹고 마시며 입고 거하며 살아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 봅니다. 그 날에 먹고 입고 자고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예수님도 그것이면 족하다 하시는 것이 아닌가요?

어느 사람이 수년 수십년 먹을 것을 쌓아놓고 기뻐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 영혼을 그날 밤 취하여 가셨습니다. 그리되면 그 수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 영혼을 가리켜 어리석은 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니까, 무조건 좋게만 생각하고 많이 받으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은혜도 많이 받으면 대부분이 교만해져서 쓰러지기 쉽습니다. 그런 이들이 종종 이단 소리를 듣거나 끝까지 은혜를 지속시키지 못하는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내가 은혜 많이 받았다고, 내가 신앙생활을 이렇게 하니 너도 그리해야 된다며 내가 기준이 되어 남을 판단하고 바라보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얻어지는 지식이나 지혜, 풍요 등은 나를 풍부하게 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는 받으면 받을수록 내가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내가 비어지고 없어지며 상대방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가 임하면 임할수록 상대방 눈의 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눈에 들보를 뽑아내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합니다. 은혜 가운데 있다 하며 아직도 상대방의 티만 보인다면 아직도 내가 온전한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은혜..., 많이 받고 충만하면 좋겠으나, 나 역시 지금까지 그리 구해 왔으나 일용할 양식 구하듯 그날 하루를 견디어내고 참아내고 그날 하루 나 자신을 잘 다스리고 ,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아픔이 있는 자들을 위로하며,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또 나아가 그날 하루를 족하게 여기며 사는 은혜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듯 내일의 은혜 또한 내일 염려하고 내일 구해 보기를 다짐해 봅니다. 이제부터는 일용할 양식과 아울러 일용할 은혜를 구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아마도 우리 주위가 한결 더 밝아지고 풍요로워 지리라 봅니다.

오늘 밤은 오늘 은혜가 이리도 족하였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갈 것만 같네요.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