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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해처럼달처럼
2012. 6. 11. 10:57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 여름 쬐약 볕을 머리에 인 채 호미지고
온종일 밭을 메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 겨울 꽁꽁 언 냇물에 맨 손으로 빨래를 해도
그래서 동상 가실 날이 없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난 괜찮다, 배부르다, 너희 들이나 많이 먹어라
더운 밤, 맛난 찬 그렇게 자식들 다 먹이고
숭늉으로 허기를 달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팔꿈치가 죄다 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고
손톱이 깎을 수 조차 없어 닳아 문드러져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술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허구 헌 날 주정을 하고
철부지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외할머니 사진을 손에 들고
소리 죽여 한없이 흐느껴 우시던 엄마를 보고도
아, 그 눈물의 의미를 이 속없는 딸은 몰랐습니다.
내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낡은 액자 속 사진으로만
우리 곁에 남았을 때 비로소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영상제작 : ec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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