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이나 은사는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은혜의 수단
많은 사람들 중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다”라 하여 체험이나 은사를 중시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받는 많은 체험과 은사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체험이나 은사란 것이 기독교 신앙 생활 중 일부는 될 수 있을 지 모르나, “체험의 종교다”해서 마치 체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무언가 주눅들게 하고, 나아가 “내가 바른 신앙을 가진 자”인가 하며 의구심을 일게 한다면 이는 “아니올시다”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받아 천국을 가려함에 있는 것이지, 이 땅위에서 날마다 이것 저것 체험하며 흔들고 떠들고 요란하게 신앙생활을 유도하는 그런 체험이나 은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 또한 그런 것을 반대하는 자는 아닙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데 있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저도 수시로 구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체험이란 것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은혜의 수단이지 체험은 은사도 아니며,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기드온이 두 번 하나님을 시험하여 기도함으로 응답받은 양털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의지하여 순종하도록 하는 은혜의 수단인 체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사람의 언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하나님이 “후회 하셨다” “슬프다” “아프다”는 등 여러 가지 이와 유사한 말씀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로 하여금 이해하도록 표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언어로 말씀하신다면 아무도 그 말씀을 알아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본래적으로 타락한 인간들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우리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 ‘신묘막측’하다는 것이 아닌가요?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한 마디로 차원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말씀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요지는,
우리는 자신이 배운 대로 받은 대로 말씀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렇다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설교란 내가 받은 바, 그리고 체험한 바의 은혜를 나누는 것일 뿐이지, “내가 그러하니 너희도 그리해야 한다”라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만큼의 하나님, 그리고 성경 지식을 나눌 뿐이지, 결코 나의 지식이 나의 은사가 나의 체험이 자랑이나 주장함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감리교회에서 처음 신앙생활을 했고, 장로교회에서 자랐기 때문에(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어느 교파, 무슨 교리 등 그것을 중요시 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따라서 누가 받은 은사가 은혜가 체험이 지식이 더 낫거나 그르다고 생각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모든 중심엔 결국 하나님 한 분 만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저는 칼빈 선생 말처럼 성경이 가라는 데까지 가고 멈추라면 멈추는 그것(하나님을 인정함으로 순종하는)을 더 좋아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누구는 말하기를, 너도 결국 그렇게 밖에 말하지 별 수 있냐? 또는 강요한다 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속 시원하게 하나님을 이해하도록 답하거나, 그 이상으로 하나님을 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은 바 체험이나 은혜가 아무리 크더라도 결코 그것이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 일은 온전히 성령님의 몫입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여러분들의 지식으로 지혜로 받은 바 은사나 은혜로 또는 체험으로 하나님을 전하려 하지 마시고, 자랑도 마시고 강요도 하지 마십시오.
“고구마 전도법” “폭발 전도” 등등
저는 이런 것들보다 내가 받았던 전도의 미련함으로 전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