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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해처럼달처럼 2012. 4. 12. 23:54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시인 황정순)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숲이 있었으면 좋겠어

      개울물소리 졸졸 거리면 더 좋을거야

      잠 없는 난 곤히 자는 당신 간지렵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을 들고 산책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쭉 펴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둘 체조 시킬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 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 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랬동안 입맞춤 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연한 헤즐럿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개 가득 담아

      잉크냄새 막 나는 신문을 볼거야

      코에 걸린 안경 넘어 당신의 눈 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 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 닿을 수 있어

      강아지처럼 부벼 볼거야 그래보고 싶었거든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히 들던 햇빛 물러설 즈음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어쩌면 그 때는 창 밖의 많은 것들 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거야

       

      겨울엔 백화점 가서

      당신의 마른 가슴 덮힐 스웨터를 살거야

      잿빛모자 두개 사서 하나씩 쓰고

      강변 찻집으로 나가 볼거야

      눈이 내릴까

      눈이 오면 좋겠다 그치 

       

      난 당신 책 읽는 모습을 보며

      화선지 속에 내 가슴 속에

      당신의 모습을 담아

      영원히 영원히 간직 할거야

       

      나 늙으면

      그렇게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