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신문 칼럼

왜 십자가인가? - 1

해처럼달처럼 2017. 4. 16. 03:25


왜 십자가인가? - 1.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명기 21:23)”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왜 굳이 십자가여야 할까요?

십자가형은 실제 당시 로마의 가장 잔인한 사형방법이었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이 십자가에 못 박혀

수일에 걸쳐 서서히 고통 가운데 죽어가는 형벌이 십자가형입니다. 유대인의 상식으로, 아니 성경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자는 하나님께 가장 저주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왜 구원을 얻는 길이 꼭 십자가라야만 되는 걸까요?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이라면 얼마든지 길이 있을 터인데, 굳이 하늘을 버리고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그러한

형벌을 받아야만 했을까요?

죽임을 당해도 쉽게 죽임을 당하는 길이 있을 터인데, 그런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십자가에서 죽어가야만 했을까요?

칼에 맞아 죽던지, 돌에 맞아 죽던지 사형의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아니면 십자가 처형이

당시의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형벌이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리고, 구원이 왜 그 십자가에만 있어야 하는 걸까요?


성경의 기록 목적은 한가지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믿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생명

(영혼 구원)을 얻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이 성경은 한낱 종이

쪽지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는 이 성경이 곧 구원, 영생을 주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이 소식을 복된 소식이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성경의 근본 가르침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구원주로 오셔서 구원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믿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 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규범도 쓰여져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굳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흉악한 자들이 받는

십자가 처형을 받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 66권의 그 방대함을 어찌 한 페이지로 쉽게 이해시킬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분량의 책을 쓴다 한들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인간의 머리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 분의 그렇게 돌아가심이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던 아니 믿던 전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 그 사실을 깨닫고 믿음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18-21)


성경의 모든 기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하셨던 말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19:28)

성경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찾아 구원을 이루시는가에 대한 예언이며 성취의

책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셨고, 그 비참한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왜 십자가라야만 되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뜻, 곧 당신이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 분이 그렇게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셨다 함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4)라고 베드로는 십자가를 말하고 있고,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3:13)면서 십자가 나무를 지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신 그 사건이 어떻게 우리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인가?

구원의 길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 아닌가? 라고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로 가도 서울로

가기만 하면 된다.”라면서 구원을 얻는 여러 가지 길에 대하여 증거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서 왜 십자가라야만 되는가?”,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은 사건이 왜 우리에게 큰 기쁨의 소식이요,

구원이 되는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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