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새들의 울음소리가 다르다

해처럼달처럼 2009. 4. 9. 22:52

새들의 울음소리가 다르다

                                                                                                                                  

이젠 사방팔방을 다 둘러봐도 완연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다. 아직 새벽을 가르는 공기는 차갑지만, 그 차가운 공기마저도 피어나는 꽃망울과 움돋는 새싹들을 막지 못한다.

동네 울타리마다 개나리가 만발하고, 가로수에 활짝 핀 꽃(벚꽃도 아닌데, 크고 작은 나무마다 하얀 꽃들이 잎보다 먼저 활짝 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돌배 나무처럼 아주 자그마한 배처럼 생긴 열매를 볼 수 있다. 물론 꽃이 지고난 후)들이 사람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아마 지금쯤이면 어릴 적 내가 살던 뒷동산에도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리라. 그리고 잠시 후면 온 동산이 붉게 물들을 것이다. 친구들이랑 진달래를 따먹으러 올라가면 “야, 문둥이가 사람 잡아 죽이고 간을 빼어 먹는다더라”는 말들을 하며 은근히 겁들을 집어먹곤 했었다. 그러나 한번도 문둥이가 아이들을 잡아먹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곳 내가 사는 동네(필라델피아)는 웬 나무와 숲이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 동네 어디를 가나 아름드리 나무들이 들어차 있고 몇 사람이 둘러서 잴 만큼 큰 나무들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각양 새들 또한 많다.  자그마한 참새로부터 꿩 종류에 속하는 것 같은(울음소리도 같다) 새들도 보인다. 그것들이 멀리 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있다. 한국에서는 산에나 가야 보고 들을 수 있는 새와 그 울음소리들을 그냥 앉아서 보고 듣고 있다.

‘redbird'라는 새는 가슴에 붉은 색을 지니고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 때론 전신이 붉은 색을 띤 새들도, 메추라기 같은 새들도, 게다가 다람쥐(한국에서는 청솔모로 부르는 큰 다람쥐)들도 판을 치고 다닌다.

그런데 얼마 전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면서 이 새들의 울음소리가 다르게 들려왔다. 아마 새들도 상당히 봄을 기다린 듯 하다. 이른 아침부터 들려오는 새들의 소리가 너무나 밝고 활기가 넘쳐났고, 기쁨이 넘쳐나는, 말 그대로 노래 소리였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었던 그들에게 봄은 새로운 계절이다. 먹을 것도 풍성해진다. 각양 벌레에다 푸른 새싹들도 그들의 먹이거리다. 게다가 짝을 짓기 위해 부르는 노래 소리도 들려오지 않던가. 새들은 봄이 되면 짝을 이루고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겨울에 알을 낳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짝을 찾고 짝을 이루며 먹을 것이 풍성한 저들의 울음소리가 어찌 다르게 들려오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들의 말소리는 어떠한가?

다른 이들이 나의 말 소리를 들으면서 무엇을 느끼고 있겠는가? 나의 말을 들으며 내 속의 깨끗함과 진실됨을 보고 있는가? 거룩함과 믿음의 모습이 나타나지고 있는가? 남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소리로 들려지고 있는가? 아니면 죽이는 독이 가득한 소리로 전달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는 말이다. “같은 물을 마셔도 소가 마시면 우유를 만들고 뱀이 마시면 독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지금 내 안에 우리는 무엇을 만들고 있으며 무슨 소리를 내뱉고 있는지 돌아보자.

소리를 내는 것이 비단 새와 사람뿐이랴. 모든 만물들에 따라 소리가 있고 그 소리가 다르다. 바로 그 소리들이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루고 사는 것이 삶이 아니겠는가.

삶은 조화다.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그 삶이 복되고 또한 불행한가로 갈리운다. 조화가 잘 이루어지면 모든 삶이 행복하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행한 것이다. 조화를 이루는 데 있어서 문제는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상대방이나 다른 삶에 조화를 이루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바로 행-불행이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조화를 잘 이루는 사람들만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다. 그를 찌르고 조롱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십자가를 지시며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조화를 이루셨다.

어느 날 색다르게 들려온 새들의 울음소리는 그 소리가 달라진 게 아니라 듣는 내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달라진 그 마음에 따라 거짓으로 보이던 것들도 진실되이 볼 수 있고, 미움으로 보이던 것들도 사랑스럽게 보여질 수 있다.

내가 이 아파트에 사는 날 까지는 이 새들의 울음소리는 언제나 내 마음에, 내 귀에 그렇게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소리로 들려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