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사연을 안고....

해처럼달처럼 2009. 4. 14. 23:36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사연을 안고....

 

이곳 미국에서는 다양한 민족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사연을 안고 다양한 삶을 살아간다.
그 삶의 형태가 비단 미국 뿐이겠는가마는, '미연합 합중국'이니만큼 그를 입증이라도 하듯 온세계 사람들이 다 와서 살고 있는 곳이다.  모든 민주-공산권 사람들이 다 와서 산다. 하다못해 미국은 이민을 위해 연 6만명 정도의 사람들에게 추첨을 통해 영주권을 내준다.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미국에서 정식으로 비자를 발급해 주지 않는 나라에 국한한다. 따라서 북한 같은 미 비자를 받을 수 없는 나라의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이 추첨에 신청할 수 있다.
전세계 사람들이 꿈을 안고 미국에 입국한다. 정식 비자를 받았던지, 아니면 무비자로 불법입국을 하던지 말이다. 이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입국시부터 그 꿈을 이뤄보고자 온갖 잡다한 일을 마다않고 열심히 일한다. 한국에도 중국 조선족을 포함하여 많은 동남아인들이 이런 형태로 와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간혹 그들에게 행하는 부당한 일들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리게 하나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흔하지 않다. 그런데 그게 민족성이라서 그런지 한국인들이 가끔 그런 추태를 보여준다. 영주권이 없다 하여 신분을 악이용하는 것을 종종 보기 때문이다.
멕시칸을 비롯한 중남미 사람들은 이곳에서 3-4년 또는 4-5년만 열심히 일해서 자기 나라에 돌아가면 부자로 산단다. 대체로 이민자 중에 영어권에 있었던 이민자들이 빨리 그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민족은 오자마자 부지런히 영어를 배운다. 그러나 한국인은 대개 예외이다. 먼저 돈부터 벌고 보자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정작 미 사회에 들어가려면 시간이 걸린다.
대개는 같은 민족끼리 서로 의지하고 돕는 경향이 많으나 한국인만은 한국인을 믿지 못하는 성향이 심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나도 처음 이곳에 올 때 사실 은근히 두려웠다. 빈손으로 오고, 키도 몸도 작은 편이고 영어도 못하고 아는 이도 없고 무작정행이고 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기 전에 키높이 구두를 사서 신고 왔으나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이 사는지는 생각을 못했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키가 큰 미국인들도 많이 있으나 수많은 이민자로 인해, 그리고 그들의 외모를 보지 않는 전반적인 태도로 인해 그 구두는 몇번 신어보지 않았다.
처음 이민 올때 누가 그를 마중나오느냐에 따라 그의 삶이 거반 정해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떤 직종에 있는 이를 아느냐에 따라 그 삶이 정해진다는 말이다. 세탁소에서 일하는 사람을 알면 그 사람은 세탁소로, 식품업계 일하는 사람을 알면 그 계통으로 많이들 빠져 나간다.
이것은 개인 뿐이 아니라 민족에 있어서도 거의 비슷하다. 중국인들은 대개 식당 쪽으로, 인도인들은 주유소, 모텔 등 멕시칸이나 열악한 환경의 히스패닉계는 힘든 일 중에서도 더 힘든 일을 하며 지낸다.
다양한 사연이란 무엇인가?
이민자들을 보면 사연이 없는 자들이 없다. 저마다 사연이 있어서 이민을 재촉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물론 개중에는 집안 형편이 좋고, 공부를 잘 하여 유학으로 왔다가 눌러 앉고 또는 직장을 따라 온 주재원 등이 이곳이 좋아서 뿌리를 내리고 살지만, 대개는 아니다.
간혹 신문지상에 나오는 것처럼 부득이하여 헤어져 살아가는 기러기 가족, 아픈 사연들을 삭이다 못해 온 자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지난 주에도 한 남자(한국인)가 혼자서 일하러 왔다가 내가 사는 아파트에 임시로 살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 친구를 도와주면서 그랬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또 이렇게 오셨습니까?라고.....
한국인이 한국인 이민자를 보면 먼저 궁금해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무슨 사연이 당신을 이곳까지 오게 했는가"이다. 이것은 나도 예외는 아니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이민 왔습니까"하면 나름대로 답할 말이 있다.
그래도 나는 일 면에서는 좀 쉽게 풀린 듯 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월간지를 만들며, 문서선교를 하고 출판사 계통에 있었던 터라 이곳에 와서 이민의 삶을 시작한 것이 미주 동아일보사였다. 주로 편집을 담당했지만, 가끔 기자로도 활동했다.
7년여가 지난 지금 그 일을 그만두고 현재 자그마한 아파트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궂은 일까지도 다 맡아 하고 있다.
난 일에 대해서는 그 일이 어느 일이건 부끄럼이 없다. 다만 부끄럽다면 목사가 되어 목회사역을 못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한국에 있을 때 노회를 찾아가 "난 목회 일도 안하고 늘 부끄런 삶을 살고 있으니 제발 목사직을 제명해 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목사가 되겠다면 가능하면 말리는 편에 속한다. 그리고 꼭 목사가  되면 난 그런다. "목사가 되지 말고 목자가 되어 달라"라고.
나도 사연을 안고 나홀로 이민 길에 올랐다. 그 사연이 나의 고향과 가족 친척, 친구들을 떠나 외로운 타향에 나그네로 살게 만들었다. 가능하면 그 사연이 나로 비롯한 나의 문제려니 하며 끌어안고 지내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때로 치솟는 분노와 억울함이 교회생활, 신앙생활을 방해한다. 아마 신앙생활 하기 전에 술-담배라도 하며 막 살아왔었더라면 벌써 그 길로 갔을지도 모른다.  목사인 내가 전혀 관계없는 일에 종사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말할지 모른다. 아니 그 눈으로 말하는 것을 왜 감지 못하랴. 그래서 나도 내가 싫다. 이럴 수 밖에 없는 내가 싫다.
일주일 전쯤 해서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저를 데려가시든지 아니면, 무언가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시던지 인도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또 찾아 나선다. 그 새로운 삶을 찾아... 그것이 또 다른 이민의 삶을 살아가게 되더라도 말이다.
그러면 내 다양한 삶에 다양한 사연 하나가 더 생겨나리라. 그리고 그 다양한 삶에 또다시 감각없이 적응되면서 살아가리라.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사연을 부여안고 살아가리라.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삶인양 착각하면서.......

 

2005년 4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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