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엑스트라입니다"

해처럼달처럼 2009. 4. 15. 06:27

 

“어떤 드라마가 뜨더라” 하면 어느날 갑자기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세인들의 눈길을 받는다. 더부살이 격으로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더라도 때때로 그 인기가 급상승 할 때도 있다. 그뿐인가. 그 방송사도, 프로듀서도, 작가도 주가가 올라간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내 속에 있는 보상심리가 크게 작용하지 않나 싶다. 내가 못한 것을, 내가 받지 못한 것을, 내가 주지 못한 것을, 내가 행복하지 못한 것을, 내가 사랑하지 못한 것을, 나의 아픈 것을 그 드라마 속에서 함께 느껴가며 어느새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이 사랑을 나눌 때는 그 주인공이 내가 된다. 주인공들이 고통을 당할 때면 나도 고통을 느낀다. 주인공들이 눈물을 흘릴 때면 나도 함께 눈물을 흘린다. 주인공들이 잘 될 때면 마치 내가 잘 되는 기분이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사실은 그렇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다. 내가 없으면 곧 세상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영원한 주인공으로 살아간다. 나는 언제나 백마 탄 왕자이고, 공주 병에 젖어 산다. 나만큼은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고,  모든 일이 잘 되기를 원한다. 세상은 그렇게 내가 원하는 만큼 되어 주지 못하는 데도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 주인공의 꿈에서 깨어나려 한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나는 엑스트라일 뿐이다. 그저 지나가는 한 과객일 뿐이다.

누구 하나 눈길 주지 않는 그런 자일 뿐이다.  누구의 시선을 받기 위해 내 인생의 드라마에 나온 게 아니다.

그저 그렇게 한 주인공을 위하여, 그 주인공을 띄워주기 위하여 잠깐 보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조연도 못되는 뒷 모습만 보여주는, 손 하나만 보여주는, 발걸음만 보여주는 누구나 다 감당할 수 있는 그저 그런 한 엑스트라일 뿐이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고 있을 때 그의 인기는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 보니 하늘만큼이나 솟아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와 회개하며 세례를 받았고, 그의 말은 예언자인 듯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가 입고 있던 보잘 것 없는 약대 털옷도, 그가 먹었던 메뚜기와 석청도 세인들의 눈길을 주목할 만큼 주가가 올라갔다.

관리들도, 군인들도, 종교인들도, 백성들도 다 그의 모습과 그의 음성 듣기를 즐겨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독화살처럼 사람들의 폐부 깊숙한 곳을 찔러댔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다 그에게 무릎을 꿇고 기꺼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었다. 네가 그리스도냐?

세례 요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 분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며 예수님에 대해 증거했다. 세례 요한을 따르던 제자들마저 그를 떠나고 예수를 좇아가는 것을 보며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망하여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철저히 엑스트라로 살아간 사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조명을 받았으면서도 그는 한 순간도 자신이 주인공이란 착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잘못 되어도 괜찮다. 내 얼굴이 못났어도 괜찮다. 키가 좀 작아도, 비쩍 말랐어도, 배운 게 없어도, 가진 게 없어도, 나 혼자 몸이라도 괜찮다. 단지 나는 지나가는 나그네요 행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서포팅 하고, 내가 높여주고, 내가 영광을 돌려야 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분을 위해 내가 살고, 내가 존재하고, 그 분을 위해 나는 오늘도 숨쉬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것은 그 분의 바람이기 때문이며, 나는 그렇게 하도록 지음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나의 삶에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을 배우려 한다. 지금까지는 내가 주인공인처럼 착각을 하며 착각 속에 살아왔다. 이제야 이 꿈에서 깨어나기를 원한다.

 

“주여, 나는 엑스트라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