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Message

기뻐하며 사십시오!

해처럼달처럼 2015. 4. 27. 00:19

 

 

묵도: 롬 5:1-4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본문 : 시편 4:6-8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빌립보 4:4-7

 

 

전체 4장밖에 안되는 서신에 기쁨이라고 하는 말을 17번이나 하고 있다.

더구나 그의 상황이 실라와 더불어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감옥안에 있는 가운데서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감옥생활을 하다가 복음을 만나고, 변하고, 그 이후의 삶을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물론 감옥이란 생활이 지금도 힘든 것은 사실이겠지만, 바울 당시의 상황과 비교해 본다면 아마도 지금은 천국과 지옥의 차이일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오히려 위로받아야 할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밖에서 자유롭게,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고, 어떤 힘이 그를 수많은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까?

바울이 그렇게도 기뻐한 내용을 보면,

그가 많이 가져서가 아니고, 많이 배워서도 아니고, 친구들이 많아서도 아니고, 높은 자리에 있어서도 아니고, 좋은 가문에 좋은 부모를 만나서도 아니고, 이쁘고 똑똑한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해서도 아닙니다.

무엇입니까?

그가 그렇게도 기뻐하는 이유가.....

산상교훈에서 복의 개념을 말하셨을 때 그 복은 위에 언급한 그런 것들을 가져서가 아니었습니다. 외부적으로 얻어지는, 내가 소유하는 내가 경험하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것들을 분토와 같이 버렸을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세상에서 얻어지는, 세상에서 누리는 그러한 것이 복의 근원이 아니고, 그것이 기쁨의 근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어떤 소망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기쁨은 소망, 희망으로부터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기쁨은 우리에게 웃음을 가져다 줍니다.

기쁨은 웃음, 다시 말해 행복과 소망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도 웃음은 있습니다. 이 세상에도 기쁨은 있습니다. 이 세상에도 복은 있습니다.

그러나, 잠 14장 13절에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이 세상에서 얻어지는 웃음이요 기쁨이요 복의 결말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세구의 시체가 검시실에서 검시관에게 검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세 구에게 똑같은 특징이 있었는데 모두 웃으면서 죽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도 신기해서 검시관이 관리하고 있던 자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시체들이 모두 웃고 있는데, 이 첫번 째 시체는 왜 웃고 있습니까? 복권 당첨

두 번째는 왜 웃고.... 자식이 훌륭한 일을 해서 상급을 받았는데 웃다가 충격받아...

그럼 이 세번째는 몸도 시꺼멓게 타고 그랬는데 왜 웃고....

벼락맞아 죽었답니다. 아니 벼락맞았는데 왜 웃고 있습니까?

사진 찍는 줄 알고 웃다가 그랬답니다.

 

 

영원히 가지 못하는 일시적인 것을 두고 우리는 웃음이요 기쁨이요, 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독일의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은 웃음을 “영혼의 해방이요,우리 마음을 결박한 죄에서 구원받은 자의 기쁨의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영혼의 해방을 받고 구원을 받은 자가 웃는 웃음이 진짜 웃음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 웃음은 기쁨을 간직하고 있는 기쁨의 표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의 신학은 희망입니다. 그래서 그는 종말론적인 희망을 말하고 있고, 그 종말은 말 그대로 종말이 아니라 희망을 열어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인류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신학, 그리고 중요한 하나님에 대한 기쁨을 간직하는 신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에게서 오고,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웃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졸업반이 되면 연주를 한번씩 하면서 지도교수의 지도와 그의 마지막 점수를 받곤 합니다. 졸업연주를 할 때면 친구 가족들도 함께 와서 연주를 듣고 축하해 주고 합니다. 어떤 한 학생이 공연장에서 연주를 했습니다. 자기를 지도한 선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관중들이 잘했다고 박수를 치고, 있을 때 이 학생은 그 박수에 눈을 돌리지 않고 그동안 자기를 가르쳐 준 선생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선생의 얼굴 표정이 그리 밝지를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박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졸업연주는 가족이나 친구들을 위한 연주회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살아가며 연주하는 우리들 삶의 연주도 어니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연주가 되어야 합니다. 그 분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그 분의 마음에 흡족한 연주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느 것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얻어 기쁨을 누리는 삶이 아닌, 바로 기쁨의 원천이요, 근원 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시편 4:7절에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 기쁘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심령에 우리의 삶에 이 기쁨과 평강이 자리하고 있습니까

 

가장 힘들 때 가장 기뻐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힘든 것을 알지 못하는 자, 고통을 모르는 자는 기쁨의 맛도 볼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핍박속에 기쁨이 숨어 있습니다. 고난 속에 희망이 있고, 아픔 속에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묵도할 때 읽었던 로마서 5장 말씀을 보면,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성도들은 환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져 갑니다. 그리고 그 인내 가운데서 더 단단해져 가고, 소망을 이루게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소망은 곧 주가 주신 기쁨이요 면류관이요 참된 곡식과 포도주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시편 16편 11절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사야 11: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기쁨을 가져다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기쁨의 근원되시는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들 삶에 기쁨이 충만하고, 그래서 그 분이 주시는 웃음이 우리들 삶에 그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사도 바울의 일생은 고난의 연속이었고, 그의 육체나 그의 삶은 즐거운 삶이 아니었으나, 오늘 우리는 그가 가졌던 기쁨을 우리도 갖기를 바라고 있음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20장 22절 이하에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어쩌면 우리들 삶은 기쁨보다도 평강보다도 환난이 더 많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우리의 사명은 그 환난 가운데에서 더 빛이 날 것이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더 큰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끝까지 우리의 믿음을 잘 지키고 사명을 감당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가득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항상 기뻐함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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