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Message

당신의 종이옵니다

해처럼달처럼 2015. 1. 29. 14:57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사랑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아버지 들은 것을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 요한복음 15:11-13

 

13 너희는 이제 종이 아니니라. 이 말씀을 보면, 우리는 종이었다는 것입니다.

친구를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의 본질은 종이었다는 것입니다. 종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종에게는 크게 가지의 자유가 없습니다.

첫째는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나의 권리, 자기 의사가 없다

둘째는 시간의 자유가 없습니다. -나의 목적이나 나의 삶을 위한 것이 없다.

셋째는 물질의 자유가 없습니다. - 소유권

 

세가지를 갖춘 것이 인격적인 사람의 기본 생활권리라면 종은 사람으로서의 기초적인 생의 권리마저 없는 외면당한 사람들입니다.

만약 내가 5백년전에, 아니 100년전에만 태어났어도 거기에다가 종의 가정에 태어났다면, 그것은 정말 상상하기 조차 싫고 역겨운 일이 아닐 없습니다.

지난주 21일 월요일 마틴 루터 데이를 지났습니다. 그는 100년전도 아니고, 86년전에 태어났고, 60년전에 흑인 해방 운동과 인권 운동의 승리를 가져왔던 사람입니다.

누구인들 종의 멍에를 메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하라면 하고 죽으라면 죽기까지 해야 하는 가장 비참한 차라리 동물만도 못한 삶을 살며 동물같은 대접을 받으며 사는 비참한 삶이 종의 삶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니, 성경의 많은 사람들은, 아니 하나님을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기를 종이라고 비하하며 기꺼이 하나님을 나의 주라고 고백하고 섬기고 충성하기를 마지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신 집의 문지기를 해도 좋고, 당신 집의 처마 밑에 오두막 집을 짓고 살더라도 좋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종에게는 자기 의지의 자유가 없습니다.

마음대로 이것저것 하고 싶은 , 멋좀 내고 다니고 좋은 옷도 입고 다니고, 맛난 음식도 맘대로 먹을 없는, 나의 마음까지도 주인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의 자유가 없습니다. 위해 시간도 살아갈 없는, 주인이 정해주는 대로 프로그램에 의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로보트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의 삶이 어느 하나도 나에게 맞추어진 것이 아닌, 주인에게 맞추어진 삶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물질의 자유입니다. 종에게 문서가, 문서가, 자기가 낳은 자녀까지도 자기의 소유가 아닌 모든 것이 주인의 소유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종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분의 종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주인이 원하시는 뜻에 따라 살기를 원한다며, 꾸역 꾸역 주인 밑으로 들어가기를 즐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앞서 언급한 비참한 종의 삶이 지금 우리에게 있습니까?

아니잖아요. 지금 우리는 우리 뜻대로 살아왔잖아요.

하고 싶은 맘대로 하고, 가고 싶은 맘대로 가고,  무언가 갖기를 원하다면 가져왔던, 새끼들은 얼마나 소중하고 귀여운가요?

나의 자녀들이 하나님 것이었나요?

나의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었나요?

나의 소욕을 위해 살아왔던 나의 시간들이 하나님 것이었나요?

아니었잖아요? 

내것이었잖아요?

 

그렇게 내가 나를 위해 살아갈 때에 주님은 나에게 오셔서 사랑하는 종아, 이제는 내가 너를 이상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친구라 하겠노라 하는 음성은 들을 없을 것입니다.

내가 기꺼이 그렇게 종이 되어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내게 오셔서 종의 멍에를 끌러주고 해방시켜 주시고,  진정한 자유, 진리가 자유케 하시는 자유를 맛볼 있고, 노래할 있을 것입니다.

지금 해방 되기를 원하는 것보다, 지금 내가 좀더 나의 뜻을 이루며 살기를하는 것보다, 지금 내가 조금 갖기를 원하는 것보다 주여 나는 종이오니 주님 나와 모든 주님의 원하는대로 쓰시옵소서 라고 내어놓을때 분은 위에 갑절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종의 멍에를 짊어지고 갈때에 주님은 오셔서 나를 친구로 대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나의 친구니라죄의 종에서, 사단의 종에서 우리를 꺼내어 주시고 노비문서를 삭제해 주시며 우리를 당신의 영광의 반열에 세워 주시는 분이 우리의 친구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사랑이 땅에 죄의 종으로 오시어서 죄값을 대신 져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너희가 나의 친구가 되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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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영국 신문 런던 타임즈가 친구의 정의에 대해서 현상 모집을 한일이 있었습니다. "친구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을 좋은 친구라고 정의할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현상모집에서 당선된  1, 2, 3등을 소개하면

먼저 3등은 "친구란 기쁨은 더해주고, 슬픔은 나누는 사람이다." 기쁠 만나면 기쁨이 배가 되고, 슬플 만나면 슬픔이 반감되는 자가 친구라는 것이 당선되었습니다.

2등은 "친구란 보따리의 동전이다." 이것은 친구란 그저 이해해 주는 사람, 모든 사정을 이해해주고 동정해주는 사람, 내가 힘들 잘했다 잘못했다 하면서 분석하고 비판하고 설명하는 없이 있는 그대로 깊이 이해해주고 깊이 동정해주는 사람이 친구라는 것입니다.

1등은 "친구란 모든 상황과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리고 나를 떠날 나에게 오는 사람" 친구라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친구 있는 사람 

       

사랑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친구가 있고

 

선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외롭지 않고

 

정의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함께 하는 자가 있고

 

진리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듣는 사람이 있으며

 

자비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화평이 있으며

 

진실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기쁨이 있고

 

성실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믿음이 있고

 

부지런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즐거움이 있으며

 

겸손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화목이 있으며

 

거짖 속임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불신이 있고

 

게으름과 태만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멸시 천대가 있고

 

사리 사욕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원망 불평이 있고

 

차별 편견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불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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