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신문 칼럼

성경이 말하는 이단의 정의

해처럼달처럼 2018. 10. 12. 12:04


성경이 말하는 이단의 정의

 

위키백과에서는 이단과 사이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단 : 기독교에서는 성경에 근거(디도서 3:10,11, 벧후 2:1~3)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 아니하는 가르침 및 교회 내의 부패 또는 범법 행위들을 이단(異端)이라고 하는데, 흔히 사이비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사이비 : 사이비 종교(似而非宗敎, Pseudoreligion)는 종교로 위장하고 종교를 빌미로 사기 등의 범죄를 일으키는 조작범을 말한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있으며, 종교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조작범 집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무엇을 이단이라 하는가?

예수님 당시 예수님도 귀신이 들렸네, 하나님을 참람하게 하는 자라 하며 유대 정통파에서는 이단 취급받으셨다. 나아가 사도 바울 역시 이단 취급받았다.(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을 전한다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 순교를 당하지 아니하였는가.

교회사에서도 이런 사건은 계속되었다. 아니, 더 심화되어 자기들과 해석을 달리하는 자들은 모두 이단 취급을 받았고, 죽임을 당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자신들의 기득권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여 이단으로 몰아세우기에 급급했다.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은 이단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필자는 다음의 성경말씀을 들어 정의를 내리고 싶다.

요일 4:1-3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와 유다서 1:4절의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가 하나님에게 속하지 아니한 영이라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 적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라는 것이다.

이단들에게는 대체적으로 이러한 특징이 있다. 유다서 1:4절과 벧후 2:1-3절 말씀처럼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씀은 이단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로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도록 하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단 교회들은 교회를 비즈니스화 하여 성도들로부터의 자유를 빼앗고, 착취하는 일 등으로 일관되어지고 있다. 그들의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 수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후에 이단의 시비에서 벗어난 이들을 보면 결코 자신들의 이를 위하여 살아간 이들이 없다.

 

물론 이단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많은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들도 많다. 이단성을 가졌다고 해서 다잡아 그들을 이단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그들은 몰라서 그리할 수도 있고, 그들의 목회 방법이 그러할 수도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 후에 이단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잘못을 깨닫고 수정하는 이들도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언제고 잘못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그들을 바로 잡아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그들이 잘못된 영을 가진 이단이라든지 또는 아니라면 시간이 가면 반드시 그 열매로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이단시비에 휩싸인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과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로 믿고 인정을 한다면 그들은 여전히 멸망 가운데 있는 것인가. 이단성이 엿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이단으로 몰아붙이고 그들을 정죄해야만 하는가. 하나님께서도 과연 그것을 기뻐하실까.

앞서 성경말씀을 보았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씀에 기초를 두고 그들의 교회관이라든지 신학적인 측면에서라든지, 또는 목회관이 다르거나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들을 이단으로만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교회관이나 목회관이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면서 권면하고 기도해 주는 성숙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갈라디아서 6:1 말씀을 보면,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고 했다. 이단이라고 정죄할 수 있는 신령한 자들이라면 그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바로잡아주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2:21절과 로마서 10:13절 말씀이다. 이단성이 있는 교회일지라도 지금 그들이 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분이 구세주라는 것을 전한다면 어떻게 그들이 이단이 될 수 있는가? 과연 그 안에 구원은 없는 것인가?

열왕기하 5:17-18절 말씀을 보면 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오직 한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한 말이다. 나아만이 우상을 섬기는 자리에 들어가 우상에게 몸을 굽히는 일을 하지만 나아만은 구원을 받았을까. 받았다고 본다.

복음을 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교회관이 다르고 목회관이 다르고 전도하는 방법이 다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어진다면 어찌 그들을 이단이라고 정죄할 수 있겠는가.

빌립보서 1:15-18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한번 상고하여보자.

마태복음 10:15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누가복음 10:12-14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화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태복음 12:41-42절에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멸망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저들이 마지막 심판 때에 오히려 신령하다고, 정통이라고 자처하는 우리들을 심판한다는 말씀이다.

무조건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보다 저들도 우리들처럼 구원이 필요한 자들로 알아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저들의 편협된 신앙관과 신학들을 바로잡아 주는 일을 하고 나아가 우리들도 구원의 길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차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