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신문 칼럼

예수를 안 믿고도 어떻게 그리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까?

해처럼달처럼 2018. 8. 5. 06:37


예수를 안 믿고도 어떻게 그리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이 없는 세상에서 행복을 찾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 우리가 원하는 행복이 있던가요?

변하는 것을 진리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영원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현재 좋았는데 잠시 후면 안 좋은 것으로 변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그것을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국민은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 주고 있는 걸까요?


여러분들은 어디에서 행복을 찾고 계십니까?

무엇으로부터 행복해 지려고 하십니까?

제가 쓴 글 하나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마음을 먹고 사는 사람



사람은 여타 동물과 달라서

마음으로 살아가는 동물입니다


행복의 기준 역시

겉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마음이 고프면 불행하고

배가 좀 고파도

마음이 부유하면 행복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 당해도

마음이 단단하면 이겨나가잖아요

마음이 좋아야 하는거라구요.


선물을 주면서 하는 말이

"이거 내 마음이야" 하잖아요.

마음을 준다는 것은

나의 몸을 주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요.

"이까짓게 선물이라고!?"

하며 분통해 하지 않았나요?


우리 서로 마음이 하나되도록 해봐요

함께 하고 있어도

마음이 천리밖에 있을 수 있잖아요.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 하잖아요.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는 것을 알면

배신당한 것처럼 기분나쁘지요?


좋은 친구를 갖기 원하는 것도

일상의 삶을 떠나

자신만의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모두 다 마음의 부요를 위한 거잖아요.


마음을 토로할 수 있는

친구 하나 있으면 부러울 게 없겠어요

나의 마음을 담아주고

그의 마음을 담아줄 수 있는

그런 그릇이 되었으면 해요.


열 친구 있어도

마음 나눌 친구 없다면...

왕따가 따로 없는거잖아요.


이제부터는

겉모습을 보고 친구를 사귈 것이 아니라

속마음을 보고 사귀는 법을 배워야겠습니다.


마음을 먹고 살면서도

배부른 삶을 살아봐야겠어요.


허참...

정말이라니까요!?


 

마음이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정말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우리 마음을 지으시고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 오십시오. 그 분만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요, 기쁨과 행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지나가 버리는 것에서 행복을 찾지 마십시오. 소유의 많고 적음에서 행복을 찾지 마십시오.

이 세계에서와 저 세계에서도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행복해 지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모르고도, 예수님을 아니 믿고도 어떻게 그렇게 행복하게 사실 수 있습니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얻었던 수가성 여인으로 돌아가실 수는 없을까요?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그 분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발견한 사람만이 자유함을 얻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다하라 요네꼬라고 하는 일본 여성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라난 그녀는 고등학교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혼자서 살아가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 결과 두 다리와 왼팔이 잘리고, 오른팔만 남게 되었는데, 그것도 손가락 두 개는 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비참하고 절망적인 모습으로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불편한 몸으로 죽음마저도 자기 스스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극도의 절망감 속에서 몸부림치는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신학생이 병원으로 병문안을 왔습니다. 그 청년은 여러 번에 걸쳐서 요네꼬를 위하여 기도하였고, 그녀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요네꼬의 그 만신창이가 된 몸 이상으로 망가진 그녀의 영혼을 만져주셨고, 그녀는 드디어 주님의 사랑과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신학생은 요네꼬에게 청혼을 했고, 드디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그들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두 자녀와 함께 육신의 장애가 없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개척한 교회를 목회하면서도 바쁜 틈을 내어 세계 곳곳으로 다니며 특별히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간증을 하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부부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요네꼬 사모가 책을 펴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이 산다는 것은 황홀하다입니다. 두 다리가 없고, 한쪽 팔도 없고, 남은 한 손마저 손가락이 세 개밖에 없는 여인이,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녀는 오히려 장애인이 되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생활이, 사지가 멀쩡하면서도 주님의 은혜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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