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신문 칼럼

왜 기독교인가?

해처럼달처럼 2018. 10. 12. 11:57


왜 기독교인가?

 

17:22-27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 가운데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최근에도 어느 분이 그렇게 제게 이야기를 해서 놀랐습니다. 아직도 수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분을 예배하는 이들은 적을 수 있겠구나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쉽게 말해서 종교가 추구하는 것은 다 같은 것이며, 시대적으로 변천되어 내려오는 과정에서 서로가 찾고 구하는 대상의 표현이 달라졌을 뿐이지, 그 찾는 대상은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도, 유교에도, 기타 모든 종교마다 다 구원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표현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길이 될지라도 목적지가 같고 그 목적지에 갈 수만 있다면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참 신)을 찾는 일에 있어서는 아예 처음부터 그 찾는 대상이 다르고 목적지가 같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 처음부터 여러 신들이 있었다면, 그 말이, 그 방법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만, 처음부터 신(God; 하나님)은 여러 신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덴이란 지역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메시지가 바로 사도행전 1722절로 27절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너희 안에 종교심이 많다고 합니다. 아덴 사람들은 세상 온갖 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단을 쌓아놓고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알지 못하는 신이 있을까 하여 알지 못하는 신이란 단도 만들어서 숭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은 멸망에서 헤어 나와 구원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계속 말합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천지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라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덴 사람들이 수많은 신들의 단을 쌓고 그들을 숭배는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한 분 신인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름이 다르게 불리어진 게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신이 그 신이 아닌 잘못된 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그 신은 사람 몸을 입고 오셨던, 그리고 사람들의 죄를 대신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에는, 아니 영적인 세계에서도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은 없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분은 오직 한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알고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과 함께 살고, 영생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와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step father, step mother 들을 두고 살고 있더군요.

몇 년 전에 함께 일하던 흑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자랑이 step father였습니다. 양 아버지가 많은 것이 그의 자랑이었습니다. 그 한 사람 중에는 국회의원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자기의 신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믿는 종교도 많이 있습니다. 양 아버지가 아무리 많아도 자기를 낳은 아버지는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는 여러 종교의 여러 신들이 있지만, 이 세상을 창조하신 신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 외에 있는 양 아버지는 다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아버지로 불리우고 부를 뿐 자신을 낳은 아버지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수많은 신을 만들어 섬기고 있을 뿐 정작 바로 알고 섬겨야 할 신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도록 하고 그분만을 바로 예배할 수 있도록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며, 그분 안에서만이 구원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기독교인들인 너희들이 그렇게 믿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냐?”라며 고집을 부린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게 믿는 당신은 선택되어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선택되어졌다라는 말은 자녀들이 태어날 때 그 어느 누구도 선택되어져서 태어난 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부모에 의해 태어난 것이지 내가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태어날 수가 없다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이미 일찍이 창세전에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자들은 더 기뻐하며 감사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로마서 1:20-25)

 

세상의 이치를 보십시오. 우주의 질서와 수천년간 변함없이 운행되어지고 있는 그 질서를 조금만 생각하여 본다면 그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요? 이것이 우연이라고 보십니까? 집마다 지은 이가 있는 것처럼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 집을 가리켜 내가 그 집을 지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그런 류의 사기들을 수없이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을 지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는 따로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유일신(有一神)인 여호와 하나님이라고도 부르고,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이름으로는 예수라는 바로 그분입니다.

만약 신이 여럿 있어서 여럿이 세상을 창조하였다면 지금과 같은 우주의 질서는 없을 것입니다. 서로가 자기가 더 나은 신이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 서로 싸우며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이 세상은 벌써 요절이 나도 수백 수만 번은 요절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분이 이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스리시기에 질서 있게 모든 우주가 운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사도행전 17장과 로마서 1장의 말씀을 다시한번 상고하여 보십시오. 그가 만드신 만물을 사람들의 마음이 미련하여져서 만드신 하나님을 부인하고 그분의 영광을 가로채고, 그분이 만드신 피조물들을 섬기며, 그분의 영광을 썩어질 것들로 바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돌아 서십시오. 그러한 무지와 잘못된 편견을 버리고 굳이 기독교를 종교라고 말한다면 기독교라고 하는 이 종교를 믿으시고, 이 종교 안에서 구원과 영생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깨달음과 구원의 반열에 서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차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