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간증

우리아가 보내온 편지

해처럼달처럼 2009. 9. 24. 23:19

 

 

본래 나는 이름 없는 한 장수에 불과했습니다. 뛰어난 용맹도 지략도 없어서 장군 반열에 들지는 못했지만, 우직스럽고 충성스럽게 나의 주인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은 알았답니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가도, 진영에 있을 때에도 난 나의 본분을 잊지 아니하고 열심히 살았었지요. 난 어쩌면 그렇게 무명의 군인으로서 어느 날 전쟁터에서 죽어갔을지도 모를, 아니면 운 좋게 살아남아 전쟁을 마친 후 집에 돌아와 사랑하는 가족들과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 인생이란 것이 나의 맘대로 되어 주는 것이 아니더군요.


어느 날 몇 막 몇 장인지는 모르지만 나의 사랑스럽고 어여쁜 아내 밧세바가 갑자기 등장하면서 나의 인생은 급작스럽게 돌아가게 되었고, “허허 참!” 본의 아니게 성경에까지 내 이름이 기록되어 만대에 남아 사람들의 불륜을 이야기 할 때마다 거론되게 될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 날도 여늬 때와 다름없이 나의 군대장관 요압과 더불어 암몬인들이 살고 있는 랍바란 곳에서 전쟁을 하고 있었지요. 우리는 그들을 에워싸고 며칠만 있으면 그들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는 상황에까지 오게 되었지요.
그 때 느닷없이 요압 장관이 나를 부르더니 본국인 예루살렘 다윗 왕에게 다녀오라 하더군요. 전쟁 중에 본토와 오락가락하며 상황을 전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기에 그때까지만 해도 그 길이 나의 삶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일이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지요. 허나 한 가지는 아직 전쟁도 끝난 것이 아니고 한참 적과 대치하며 싸우던 상황에서 왕에게 나아가 기별을 한다는 것이 조금 이르다는 생각은 했었지요. 그러나 한편, 그렇게 해서라도 이스라엘의 등불인 다윗 왕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었으니 내 마음은 한껏 부풀어 있는 것도 사실이었구요.


왕께 나아갔을 때 왕은 상기된 얼굴과 목소리로 몇 가지 안부를 물은 후 집에 돌아가 쉬라고 하더군요. 참으로 기뻤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사랑하는 아내를 볼 수도 있고 잠시나마 피곤한 몸을 쉴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은총이었다고 생각을 했지요.
막상 궁을 빠져 나오려는데 그 바깥 들에도 왕의 신복들과 군인들이 유사시를 대비하여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 당시 그들이 내 눈에 들어왔는지 저도 이해가 안됩니다. 그냥 집으로 달려갔더라면 아마 나는 그렇게 비참하게 돌과 화살에 맞아 죽지는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허허허허..."

그들을 보는 순간 갑자기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동료들과 나의 자랑스런 군대장관 요압이 생각나서 도저히 나 혼자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는 염치가 들지 않더라구요. 어차피 내 아내는 내가 돌아온 것도 모르고 있으니 이곳에서 신복들과 하루 밤 유하고 전쟁터로 돌아가야 겠다 싶어 바깥 진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다윗 왕의 친절함이 분에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하들을 동원하여 집에 돌아가서 먹을 푸짐한 먹거리와 술과 안주 등을 주는 것이 이상하다 싶더라니까요. 불현듯 아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은 직감이 들더라구요. 때로 이 직감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가끔은 우둔한 남자에게도 있다는 것을 뭇 여성들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하하하하


사실 내 아내는 내가 보기에도 참 아름다운 여인이었죠. 어디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는 그런 미색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난 늘 아름다운 여인을 얻어 살게 된 행운아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지요.
한 가지 그녀에게 있어 흠이라면 미모와 함께 그리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지는 못한 것이 조금의 흠이었지요. 게다가 그녀는 갖지 않았으면 좋았을 야심과 욕망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때때로 현재의 삶에 만족치 못하고 때때로 나의 신분에도 불평을 하기도 했지만, 그저 난 사랑스런 여인의 투정이려니 하고 받아 넘겨주곤 했지요.


여기서 뭇 남성분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모든 여인네들 가슴에는 시기와 욕심이 있어서 남들보다 더 우세하고 싶은, 남들 보다 더 잘 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그것을 채워 주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뱀에게 꾀임을 받은 하와의 그런 마음이 모든 여성들에게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후에 보셔서 아시겠지만, 내 아내였던 소생이 왕의 후계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녀의 야심과 욕망은 솔로몬을 왕 위에 올려 놓지 않았던가요?


그래서 그녀는 나 하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밖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더 충족시키기 위해 늘 갈급해 하는 여인이었으며, 때로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이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에도 서슴치 않고 행할 수 있는 열정도 있었지요.
결국 그녀의 그러한 욕망은 다윗 왕과 불륜의 관계를 갖게 되고 그만 내 목숨이 하찮은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전쟁터에서 이슬처럼 사라지는 운명이 되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허허허허


그러나 전, 그 누구도 원망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부족하여 아내를 충족시켜 주지 못 했을 뿐더러 다윗 왕은 내가 목숨을 바쳐 섬기고 충성을 해야 하는 군주였기 때문이죠. 그 일의 결과가 어떠함을 떠나서 그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나의 주인을 위해 희생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는 말이지요. 그리고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그 이면에 개입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나 또한 믿으니까 말이죠.


결국 나는 그 밤, 그리고 그 다음 날 밤을 지나면서 나의 운명의 종점을 바라보게 되었지요. 그리고 나는 나의 손에 나의 운명을 결정지을 한 장의 편지를 들고 다시 전쟁터로 돌아갔습니다.
아마 난 요압 장관이 나를 최전방에 내보내지 않았어도 나 스스로가 그 길을 선택하여 그곳에서 나의 운명을  결정지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그 결정에 대해 나는 아무런 후회도 원망도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하였기에 그녀의 욕망을 채워만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꺼이 내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었지요. 다윗 왕을 위해서도 말입니다.


3천 여 년이 지난 지금 새삼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지 모르지만 감히, 그리고 정중히 여러분들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다윗 왕과 나의 아내 밧세바는 패역한 불륜의 관계였다기 보다 그러한 불륜의 관계 가운데서도 거스릴 수 없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음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불륜의 삶을 한번 돌아보자고 말입니다.
개개인의 삶에 이르기까지 간섭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아간다면 지금 우리들 삶이 온갖 불륜으로 얼룩져 있더라도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깨끗케 씻어주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에 기꺼이 동참해 나가는 우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부탁드리자면, 지금도 여러분들은 밧세바를 말할 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라고 말을 하는 데 이제부터는 ‘다윗 왕의 아내 밧세바’라고 불러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그녀는 다윗 왕과 더불어 많은 자녀를 갖지 않았던가요? 그리고 그녀 또한 그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