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단풍

해처럼달처럼 2015. 11. 2. 05:29

 

 

어디로인가 아무 곳이라도 훌쩍 떠나고픈 그런 계절이다.

동부지역은 동네 어디를 돌아다녀도, 차를 타고 다니는 길목마다도 화려한 단풍으로 물든 거리 속에서 가을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것을 있다. 그래서 눈이 즐겁고, 마음마저 상쾌해지고 기쁨으로 가득 차는, 고운 단장으로 치장하지 않아도 만물이 이쁘게 보이는 그런 계절이다.

올해엔 지난해에 비해 유난히 단풍 색이 선명하고 아름답다. 이유인즉슨, 여름을 어떻게 지내 왔느냐에 따라 단풍 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조금 가뭄이 있었던 해였다. 아주 심한 가뭄 같으면 나무들도 식물들도 시들시들해지고 더욱 볼품이 없어졌을 터이지만, 다행히 이곳 동부 지역은 그렇게 심한 가뭄이 아니었었다.

적당한 가뭄은 그만큼 일조량이 많았었다는 것을 말한다. 일조량이 많으면 과일의 맛이 달아진다. 그래서 여름 수박 맛은 다른 해보다 달콤하여 대충 골라서 먹더라도 거의 모든 수박이 맛을 지니고 있을 정도였다. 과일도 그러했지만, 나뭇잎들도 색깔이 다른 해보다 더욱 선명하게 자기들만의 색깔을 자랑하고 있었다.

 

적당한 가뭄은 오히려 아름답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 내듯이 사람에게 있어서도 적당한 고난은 유익함을 가져오는 것이 사실이다. 적당한 고난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성숙할 아니라 더욱 굳세게도 만들어준다.

수많은 사람들이 낙엽을 노래했다. 낙엽을 인생에 비유하여 낙엽을 통한 인생의 교훈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낙엽 밟는 것을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터이지만 나도 그랬다. 유난히 예쁜 단풍잎을 따거나 주우면 그것을 책갈피에 끼워놓고, 때로는 코팅까지 해가면서 예쁜 것을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어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을 멋지고 아름답게 단장하며 오래 오래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인생이란 삶의 질곡이 그렇게 우리가 원하는 것처럼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내가 노력하여 힘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없다는 것을 지금까지 삶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달콤한 과일들이, 저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단풍잎들이 자기의 수고와 노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해가 뜨면 햇빛을 받아들이고 혹독하게 추웠던 겨울도 견디어 내면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환경들을 감당하고 인내하면서 때가 되니 그런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을 방문했을 여동생이 코팅된 클로버를 주어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이쁜 단풍잎은 아니지만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의미를 지닌 잎이기에 받아 가지고 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고생하며 살고 있는 오라버니를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애잔했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고맙기도 하지만 못내 미안한 마음도 든다.

찬서리 맞으며 마지막 남은 잎새마저 떨어지기 이쁜 단풍잎 개라도 따서 곱게 코팅하여 동생에게 보내 주어야겠다. 동생이 바라는 행운은 아직 받은 같지 않지만, 그래도 이쁜 단풍잎처럼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같아서 말이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문턱에서

Nov. 1. 2015

 

해처럼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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