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에세이>
나는 백만불을 가진 사나이다.
늘, 언제나, 낮이나 밤이나,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나는 언제나 백만불을 지니고 산다. 아무리 써도 늘 그대로인 채 줄어들 지를 않는다. 어쩌면 더 될지도 모른다. 아마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국보급이라고 하니까 국보에 어떻게 값을 매기겠는가.
2-3년전 쯤 어느 할아버지를 가정에서 간호했던 적이 있었다. 이 분 일찍이 이민 오셔서 다운타운에서그로서리를 하셨다. 일하는 사람이 보통 5-6명 있었다니 그로서리치곤 제법 큰 규모이다. 게다가 그 건물이 자기 건물이니 세상 사람 말하는 대로 먹고 사는 데 지장없고, 지금도 그 아들이 대물림하고 있으니 그 분은 그 건물과 가게 하나로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시는 분이다.
그런데 그 분이 사고를 당하여 장애를 입게 되고, 지금은 바깥 출입도 삼가한 채 집안에만 계시니 오죽이나 답답하시겠는가. 그런 그 분이 내게 한 말이 있다. 나 뿐 아니라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거의가 그 이야기가 나오는 듯 싶다. “당시에 가게가 얼마나 잘 되는지 제법 돈 좀 만지게 되었노라.”고.
오래 전에 이민 와서 사업을 하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던 말이 있다. 2-30년 전 미국 경기가 좋을 때이다. 아무런 가게라도 하나 갖고 있으면 돈을 억수로 벌었다 한다. 그런 말을 몇 사람에게로부터 들었다. 일을 마치고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면 미처 다 계산하지 못한 돈을 자루에 담아 가지고 와서 집안에 쳐박아 놓고 살았다 한다.
이 분도 그 정도였는지 몰라도 집안에는 늘 현금 3-40만불 정도가 있었다고 한다. 돈을 그 정도 쌓아 놓고 살아가는데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분의 염려는 다른 데 있었다. 집안에 현금을 쌓아 놓고 살다 보니 불안하기가 짝이 없다는 것이다. 은행에 갖다 저축하려니 세금문제가 걸리고, 부득불 현금을 쌓아 놓고 살다 보니 마음 놓고 어디 갈 수도 없고 그 기분도 돈을 아니 가져본 자는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시안들이 집안에 돈을 두고 산다는 소문이 나서 아시안들이 밤 손님과 총을 든 분들의 타겟이 되어 버리기도 해서 종종 안 좋은 일을 당하기도 한다. 그래도 뭐라 말 못하고 쉬쉬 하고 살아간다.
그런데 나는 “모든 사람들 다 보시요!”하고 백만불을 이고 다닌다. 모든 사람들이 볼 때마다 “와아! 백만불짜리네요!”하며 감탄을 한다. 그렇게 백만불을 늘 갖고 다니는 데 하나도 불안하지 않다. 그것도 늘 머리에 이고 다니는 데 말이다.
내가 백만불을 가진 사람으로 불리게 된 것은 불과 얼마전이다. 분명 전에도 똑같이, 지금처럼 백만불을 갖고 다녔는데 그 때는 누구 하나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의 머리는 곱슬머리이다. 태어나면서부터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고,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물려받았던 것 같다. 예전 총각 시절에도 꽁지머리는 아니지만 제법 길러본 적도 있었다. 나의 머리는 완전 바글 바글한 곱슬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웨이브가 만들어지면서 보기가 좋다. 실은 나는 내 머리를 아주 싫어한다. 고개를 옆으로 제끼면 척 넘어가는 머리, 바람이 불면 휘휘 날리는 그런 머리를 좋아하며 부러워했다.
나의 이 머리를 보고 사람들은(주로 여성들 그것도 아줌마들) “와아! 머리가 백만불짜리네요.”한다. 어쩌다 한번 듣는 게 아니고 너무 자주 듣는다. 어떤 때에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파마를 했느냐?”고 묻기도 한다. 곱슬머리가 아닌 파마 머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본다. “내가 싫어했던 이 머리가 백만불짜리라고?” 그러면서 한번 계산기를 두들겨 본다. 여성들이 파마 머리를 하기 위해 일생동안 어느 정도의 돈을 쓸까 하고 말이다.
어느 날인가 어느 남자하고 대화하는 데 “와아 그 머리 국보급이네요.”하며 부러워 하는 남자도 생겼다. 나는 웃으면서 “그래서 좀 더 길러서 꽁지 머리 한번 해볼까 하는데요?” 했더니 “여자 꼬실 일 있어요?” 한다. 그래서 나는 그 때 알았다. 여자를 꼬실려면 꽁지 머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곤 나 스스로가 싫어했던 이 머리가 그렇게도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머리였구나 하면서 소중하게 씻어주면서 가꿔 준다. 많이 쌓아 놓고 어쩔 줄 몰라서 염려하고 불안해 하는 그런 것이 아닌, 모든 사람들(또 강조하지만 여성들)이 부러워 하는 백만불, 백주 대낮에 내놓고 다녀도 누가 빼앗아 가지도 않고 오히려 부러워 하는 내 머리이니 말이다.
그리곤 이번 여름이 지나고 나면 한번 머리를 길러봐야지 하고 생각해 본다. 그래서 여자를 꼬실 수 있다면 더욱 좋겠고, 그보다는 나의 인생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새로운 말을 들을 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그리고 이 참에 나의 백만불짜리, 아니 국보급 머리를 세계 유산으로 등재해 볼까 하고도 생각해 본다. 모든 여성들이 추천해 준다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