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두 년을 품고 태어난 아이

해처럼달처럼 2014. 3. 21. 10:24

두 년(年)을 품고 태어난 아이

허 참!

제목이 너무 야한 것은 아닌가? 아니면 무슨 글 제목이 이리 알쏭 달쏭 아리송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나도 처음에는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냥 조금 서운한 마음이 한 구석 자리하고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 더 우스개 소리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으니 그 진위는 이러하다.

그 진위를 말하기 전에 한 가지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들 생활 습성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이고, 우리들 삶에 여전히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며느리가 아이를 가졌는데, 출산일을 따져 보더니 2014년 1월 10일 넘어 중순께 정도라고 한다. 나는 신앙인이다 보니 사실 띠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한다거나 남들처럼 무슨 궁합을 본다거나 그러지는 않지만 아직도 우리네 습성에는 나이를 물을 때 “띠가 뭐냐?”고 묻는 게 더 편할 때가 많다.

“몇 살이냐?”고 물으면 몇 년도인가 하고 한참 생각해야 하지만 띠를 말해주면 년도 계산이 빠른 게 아직 우리들 사고방식이요,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같은 띠를 만나면 무언지 반갑기도 하다. 같은 동갑내기는 아니라 할지라도 띠 동갑은 꼭 친구 같고 정이 더 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54년생이니 갑오생 말띠이다. 아마 이 글을 보는 분 중에 54년 갑오생이 계시다면 분명, “어! 나도 갑오생인데....” 그럴 것이다. 마침 올 2014년도가 갑오년이다. 다시 말해 환갑의 나이를 맞은 것이다. 그런데 손자가 나랑 같은 띠 동갑에다 같은 갑오생으로 태어난다니 사람들에게 그리 말한 것이다.

“그 녀석이 이 할아비랑 같은 띠 동갑이 되게 되었다”고....

나는 이미 형제 중에 같은 띠를 가지고 있는 형님이 계신다. 그러나 갑오년 말은 아니다.

그런데 손자 녀석이 같은 말띠에 갑오생으로 태어난다니 내심 더 반가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 녀석이 할아비가 싫었던 것인가? 아니면 “할아버지, 사람 나는 것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네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2013년 한 해를 마무리 하며 일하고 있는 12월 31일, 일찍 일을 마치고 저녁에는 교회에 가서 송구영신예배를 드려야 하기에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다. 손자 녀석이야 응당 받아 놓은 말띠라 생각하고 그 문제에 대해선 전혀 생각도 않고 마음 턱 놓고 일하고 있는 데 갑자기 아들 녀석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아버지, 저 지금 은주 데리고 병원 가요. 아이가 나올 것 같아요.”라고.

“뭐? 뭐라고? 병원 간다고? 아이가 나올 것 같다고?”

허 참!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지... 손자가 태어난다는 기쁨보다도 생각했던 그 말 띠, 나랑 아니 할아비랑 같아야 하는 말띠가 먼저 생각났다. 마음엔 내심 조바심을 안고 그러나 그 심정을 감추고 며느리 안부를 묻는다.

“아침에 갑자기 진통이 와서 병원엘 가야겠어요. 혹시 모르니 아버지 미역국 좀 끓여 주실 수 있어요?” 한다.

그리고는 오후 2시쯤 되어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이미 양수가 터졌다고 한다. 무식한 이 놈은 양수가 터졌으면 아이가 곧 나오겠구나 했다. 그러니 나는 태어날 손자 녀석이 같은 띠 동갑, 그것도 같은 갑오생 말띠가 아니 된다는 사실에 적잖이 섭섭함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오후 일찍 병원에 갔기에 늦어도 저녁 때 쯤이면 아이가 나오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양수가 터져도 아이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아마 그래서 아이를 낳는 여인네들의 해산 고통이 더 컸던 것 같다.

같은 띠 동갑은 이미 일찌감치 포기하고 일을 마친 후 부랴 부랴 미역국과 밥을 해서 병원에 갖다 주고 송구영신예배 드리러 교회에 갔다. 송구영신 예배시간은 대개 밤 11시 30분 넘어서 하게 되는 데 그 때까지도 아이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포기했던 나의 마음에 슬금슬금 띠 동갑 생각이 도지길 시작했다. “야! 잘 하면... 조금만 견디면 띠 동갑 손자를 보겠구나!”라는...

그러고는 예배 시간이 되어 전화기를 진동에 놓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가끔 전화기를 꺼내 시간을 보면서... 40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나의 기대는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다. 45분쯤이 되었나? 연락이 왔다. 아이가 나왔다고....

아이는 12월 31일 밤 11시 31분 경에 태어났다 한다. 아마 그 몇 분간 연락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예정보다 적어도 열흘 정도는 먼저 나온 것이다. 그리도 빨리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었던 것일까?

후에 아들 녀석에게도 말했다. “아니, 한 30분만 참았어도 되는 데 허 참! 어찌 이럴 수가!?”

며칠 지난 어느 날 아들하고 같은 이야기를 하는 데 아들 녀석 말한다.

“아버지, 그래도 얘가 복덩이에요. 30분 먼저 태어나는 바람에 세금 보고를 하면 상당한 돈을 리턴받을 수 있어요.” 라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1월 1일 낮이고, 여기서 12월 31일에 태어났으니 두 해(年)를 품고 태어난 아이로 크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 생각을 해 보니 그것 참 해석이 기가 막히게 좋은 생각이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나는 아이가 어디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 분명 이 녀석은 제 몫 톡톡히 해 낼 큰 아이가 될 것 같구나.

그러면서 불현 듯 떠오르는 “두 년을 품고 태어난 아이”라는 글의 제목이 떠오른다.

유머스럽기도 하고 좀 야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글은 좀 재미있게 봐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 처음 생각대로 그렇게 제목을 달았다.

“그래. 나의 사랑스런 손자야, 넌 지나가는 해(年의) 수많은 아픔과 질곡들을 뒤로 보내고 새로 오는 이 해의 밝은 소망으로 태어나 장차 수많은 사람들에게와 또 너를 보내신 하나님에게도 꼭 필요한 자가 될 수 있도록 건강하고 지혜롭게 잘 자라 주려무나.”

이 놈은 태어나자마자 30분 만에 나이가 두 살이 되었으니 크게 될 놈은 무언가 달라도 다르구나. 넌 참 대단한 놈이다.

그리고, 참 고맙다. 이젠 이 할아비도 너로 인해 기쁨을 얻고 그냥 두서없이 끄적대는 글이지만 글을 쓸 수 있는 소재가 또 하나 생겨서 좋고, 또 하나, 너로 인해 생각하고 바랬던 나의 그 쓰잘데 없는 생활 습성, ‘띠’라고 하는 둘레에서 벗어나 생명이라고 하는 것에 더 큰 기쁨을 안고 살아갈 수 있도록 깨우침을 준 너에게 다시금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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