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심사위원의 넋두리
지난 토요일 필라에서 1시간여 거리에 있는 모 한국학교에서 주최하는 말하기 대회 심사위원으로
다녀왔다. 그동안 다른 학교의 경우를 보아 대개의 참가 학생들이 한국인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개중에는 입양아도 있고,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있고, 외국인들과 결혼을 하여 태어난 한 쪽이
한국인인 아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 번째 나온 출전자부터 나를 놀라게 했다. 인도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이가 아닌
성인, 그리고 다음에는 폴란드계라고 밝힌 사람, 한국인의 피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완전 외국인
성인이 한국말 대회에 나왔기 때문이었다. 중간 중간 어린이들도 나왔지만 이날 대회에는 성인들이
많이도 참여했다. 나이와 국적에 관계없이 순수 한국말하기 대회에 한국말로 도전을 했던 것이다.
참가자 명단을 보니 어느 학교에서 신청했다는 기록이 없어서 주최측 학교 교장에게 물으니 공정한
심사를 위해서 다른 대회에서도 그렇고. 출신 학교를 밝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외국인으로서 한국말을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는 한국 남자와 결혼을 해서
한국말을 배우는 이도 있으나 한국말 배우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내심 적잖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미국 땅에 발을 붙인지 벌써 20년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꼭 사용하여야 하는 영어를 배우지 않고 노력도 안하고 있는 자신을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열 두 명의 순서가 끝나고 전체 종합점수를 내야
했다. 그래서 그곳 주최측 교장에게 물어 보았다.
“아이들로부터 어른들이 많이 나왔는데, 어느 쪽으로 더 치중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교장은, 애초 연령별 구분없이 모집한 대회이니 그에 관계없이 잘하는 순서대로 주면 된다고
한다. 그야 당근, 맞는 말이지.
그날 그냥 그렇게만 했으면 이날 행사가 잘 마치는 건데, 그만 나에게 엉뚱한 생각이 들어왔던
것이었다. 물론 그 엉뚱한 것이 그렇게 해서는 정말 안 되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심사위원 전권에
의해 그렇게 해도 옳았던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나는 생각했다.
한국인 아이들이나 부모 중 한쪽이 한국인인 어린아이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국 문화에
접할 기회도 많고 한국말 배울 기회도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시간도 넉넉지
않고 한국말 배울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아 순수 외국인인 어른들에게 상을 주어 앞으로 더 한국
커뮤니티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그리고, 그날 참여했던 흑인 학생, 황대철이라는 한국 이름까지 갖고 있었던 -그의 나이는
몰랐었지만-, 나름 한국인을 많이 알고 이미 한국 사회에 몇 번 노출되어 장학금도 받고 한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의 말하기 내용에서 알았지만, 지난해에는 한국도 다녀오고, 상과는 관계없이
앞으로도 계속 한국 사회와 연관이 있을 아이였기에 그 친구가 훌륭하게 잘 했으나 양해를 구하며
상에서 제외시켰다. 나중에 듣고 보니 그의 나이 20세나 된 대학생이었다.
나는 이렇게 양해를 구했다. “학생이 정말 아주 잘해서 응당 상을 받아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기회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한 양보함도 또 다른 한국 문화를 배워 나가는 것이니 그렇게
계속 잘 성장해 갔으면 좋겠다.”고.
물론 통역하는 자가 제대로 하지 못해 잘 전달은 안되었어도 그도 충분히 이해하며 받아들인
태도여서 내심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불거졌다. 내가 잘 아는 어떤 이가 당장 나에게 좇아와서 그 주최측
교장하고 짜고 그 학생들만 상을 주었다며 듣기 민망한 말을 한다. 그리고, 제로미를 따라 왔던
학교 선생도 한마디 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주최측 교장은 시달리기 시작했다.
제로미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이미 내가 들은 그 말을- 제로미에게 하고 그대로 이메일을
써서 주최측 교장에게 항의조로 보내게 했고, 주변 사방 사람들에게 부당함을 이야기 한 것이다.
심사 후에 보니 묘하게도 1, 2, 3등이 주최측 학생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아주 잘못한
것을 그리 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리 소속 학교를 알았더라면 나는 그런 일은 막았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는 12명이 참석해서 5명이 상금이 있는 상을 받았고, 나머지 7명이 상금이 없는
장려상을 받았다. 나는 무슨 상이 있는지도 모르고 심사를 한 후 점수를 주최측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남들이 오해를 할만큼 주최교 교장은 바보인가. 5명 중에 3명을, 그것도 1, 2, 3 등을
모조리 자기 학교 학생에게 주도록 심사위원에게 이야기했다면 정말 바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상식 선에서 생각해보아도 웃기는 일이다. 주최교 교장에게 왜 소속 학교를
알려주지 않았냐, 알았다면 조정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했더니 주최교 교장은 "심사에서 조정,
어쩌고 그런 말을 할 때부터 그것은 부정이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심사위원과 짜고 치지
않았으면 된 것 아닌가" 하고 잘라 말했다.
결국은 주최측 교장하고 이메일로 주고 받으며 그 학생에게 공동으로 대상을 주는 게 낫겠다
싶다는 심사위원의 의견을 보냈고, 심사위원의 판단이라면 그리하겠다 해서 그리하기로 했으나
이 오해는 쉽게 사그러 들 것은 아니었다.
나는 심사를 마치고 나서 참 부끄러웠다.
규정에 의해 상을 주었더라면 응당 그런 문제는 없었을 테지만, 앞서 말한대로 나 나름대로의
심사 규정을 가지고 이해까지 시켜가며 그리했으면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신사요 예의요
우리 한국 사람의 한국 사람다운 것으로 생각했던 것인데, 이건 터무니없이 오해까지 받고
심사위원의 권위까지도 떨어뜨렸으니 말이다.
지혜롭게 처신하지 못한 나의 잘못도 있으나, 내가 항상 생각하는, 다른 사람도 다 나와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절감해 보지만 이미 때는 늦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변 아닌 변, “내 신앙양심으로 절대 부정적인 일은 하지 않았다는...” 변을
늘어놓으며 이메일까지 답하게 되고 꼬락서니 참 우습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나 자신이 그 누군가와 적당히 짜고 고스톱 치는 사람으로 밖에는
비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고, 그렇게 밖에 생각 못하는 한국인들 중의 한국인이라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대회니만큼 규정대로 해야 했다.”면 할 말은 없으나, 심사위원의 생각과 결정, 권위는 모두
무시된 정말이지 어느 한 심사위원의 넋두리 아닌 넋두리를 이렇게 토로해 본다.
앞으로는 나를 절대 그런 자리에 부르지 않을 것이지만, “앞으로 다시는 나를 그런 자리에
세우지 말아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