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하늘을 바라보며

해처럼달처럼 2017. 4. 27. 06:30

 

 

요즘 나는 하늘을 자주 바라본다. 가을하늘이라 청명해서만은 꼭 아니다.

꼭은 아니라도 가을하늘은 참으로 상쾌함을 가져다준다.

높지막한 나무위에서 바람에 부대껴 흐느끼듯 떨어지는 나뭇잎도 그렇고, 진 초록색이 어느덧 그 옷을 벗고

알록달록해 지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지금 내 나이 50에 들어 자주 하늘을 바라보던 때를 돌이켜보니 지금이 세 번째인 것 같다.


그 첫 번째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어렸을 적 한 여름밤 넓적한 마당에 모닥불을 지펴놓고 모닥불 속에

옥수수, 감자, 콩깍지 등을 구워먹으며 또래 아이들이랑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노래를 부르고, 또는

재잘대다가 긴 섬광을 그리며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와아!”하고 환호성을 지르던 때이다.

그 때 하늘은 참 맑기도 했고, 공기도 좋았다. 어렸을 적 작은 눈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별도 엄청 크게 보였다.

달 또한 커다랗고 환하게 보여 보름달이 뜨면 당장이라도 그 달빛 속에 빨려 들어갈 듯한 느낌을 받고 1월 정월

대보름이면 논밭에 달려 나가 불 깡통을 돌리며 달과 하늘에 소망을 빌며 자랐다.

그렇게 밤하늘을 바라보며 동무들과 우정을 쌓으며, 그 속에 꿈을 묻고 자랐다.


그러다가 두 번째 하늘을 바라보게 된 것은 22세 때인 것 같다.

그 때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처음으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남자 나이 21세가 되면 병역문제로 인해

신체검사를 받게 되는데, 나는 조금 늦게 자란 편이었다. 신검 당시 내 체중이 47킬로그램이었다.

아주 작은 키는 아니었기에 담당자가 내 배를 쥐어박으며(굶고 왔다고 생각) “50킬로그램!” 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또 다음 신장에서도 나는 미달이었다. 신장, 체중이 다 미달이었다. 결국 군대도 안 가고 방위도 안 받은

나는 일찌감치 직장생활에 뛰어들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하나님 은혜인 것만은 분명하다. 만약 군대라도 가서 술과 담배라도 배우며 살았다면

아마 나는 한량으로 살았을 것이다. 22살 때 한참 방종이라도 부리고 막 살아갈 그 때 하나님은 우리 가족을

부르셨고, 그 대열에 나도 동참하게 된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은 나에게 엄청 큰 은혜(내 생각으로)를 주셨다. 처음 교회 나간 날이 수요일 저녁이었다.

그리고 그 교회는 감리교회였다. 그래서 장로교 목사인 나는 아직도 감리교회가 큰집처럼 느껴진다.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가 하면 처음 나간 그날부터 그 다음 교회 가는 날을 사모하며 모든 교회 예배에 다

동참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산기도까지도....

그리고 불과 3개월만에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찬양, 청년회 활동 등 교회에서의 활동이란 모든 것을 다 했다.

심지어는 성도들이 그랬다. “저 친구는 다른 교회 다니다 온 사람이라고. 그뿐 아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시작하셨던 어머니마저도 나보고 교회에 미쳤다고까지 하실 정도였다.

그 때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일하면서도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우리 주님 오시는가 하며 하늘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믿음을 키워나갔고, 하나님 주시는 꿈을 키워나갔다. 그러다가 26세가 되어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목사가 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 50대가 되어서 새삼 하늘을 바라다본다.

갈 날이 점점 가까워져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옛날이 그리워서다.

아직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목회도, 제대로 된 신앙생활도 하지 못하기에 이래선 안 되는 데, 아니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나....” 하는 허탈한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주제에” “난 앞으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는 마음이 서글퍼서 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토로를 내뱉는 것이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이라도 나아지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면 좋을텐데 그렇지 못한

모습을 글로 표현하는 것도 죄스럽기만 하다.

허나 내가 하늘을 바라보는 또 다른 이유의 하나는 아직도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으니 그 남은 생을 하나님

나를 부르시던 그 처음 시절로 돌아가 뜨거운 마음으로 멋진 생을 마감하게 해달라고 하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이 글을 처음 쓴 지 벌써 10년이 후딱 지났다. 아직도 여전히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나의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고,

한심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어간에 수필 등단을 계기로 문인이라는 말도 듣고, 아직 남들 따라가려면 어림도

없지만 나름 흉내도 내보며 자그마한 꿈을 하나 더 보태본다.

이쁘고 아름다운 글을 써서 삶에 지치고 힘들어 하는 영혼들에게 위로를 주고 평안을 줄 수 있는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고....


2017년 4월 정리.

현재는 필라복음신문을 만들어 지역 동포들과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신문 지면에 보통 나의 글이 2, 3개 이상은 들어간다.

이것이 나의 인생 말년에 하나님이 주신 일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언제까지 감당해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라면 주님이 인도하여 주실 것이다.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웃는 연습  (0) 2018.05.15
당신도 이젠 고아가 되었네요  (0) 2017.12.08
이런 목자, 이런 성도 없을까?  (0) 2017.02.25
어느 심사위원의 넋두리  (0) 2017.01.19
오늘도 나는 신비를 바라보며 산다  (0) 2016.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