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당신도 이젠 고아가 되었네요

해처럼달처럼 2017. 12. 8. 08:28



당신도 이젠 고아가 되었네요.”

어머니의 돌아가심을 들은 어느 분이 나에게 한 말이다. 그럴까? 나도 이제 고아인가?

아마도 그런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말한 사람이나 또는 고아라는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부모를 먼저 하늘나라에 보낸 그 마음을 위로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부모를 잃어버린 철없는 아이를 한번 생각해본다. 하늘이 노랗다 못해 깜깜할 것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부모 밖에는...

부모를 보내는 자식들의 마음이야 어찌 섭하지 아니하랴. 더구나 어머니를 보낸다는 것은 연세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무언가 커다란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그 가슴이 휑할 것이다.


지난 124일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품에 안기셨다. 지난여름 형제들로부터

어머니가 위독하시니 다녀가는 게 좋겠다.”라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다녀오면서 약 20여일을 어머니와 함께 하다 돌아왔다.

나는 모든 상황이 여유롭지 못해 거의 5년 정도에 한번 꼴로 한국을 다녀오고 있다. 어머니 연세가 있어서 다녀올 때마다

이번 보는 것이 마지막이겠거니 하며 다녀온다. 그래도 용케도 잘 버텨주시면서 올해 연세 96세까지 맞이하셨다.

조금만 더 견뎌주시면 백수는 맞이하겠다 싶었다.

그러나 사람의 살아감과 더구나 인명은 재천이라는 수식어 앞에서 오랜 삶을 바란다는 자체가 욕심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대부분 장수하는 분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무욕’(無慾)이다. 게다가 먹는 것도 소식’(小食)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아예 오래 오래 살며 잘 먹으며 살고 싶은 마음일랑 접고 사는 게 좋을 듯싶다. 아버지를 일찍 잃은 나는

어머니라도 오래 사시기를 바랐다. 그 바람 때문일까. 96수를 하셨으니, 그만하면 충분한 듯하다.


부모를 잃은 자녀들의 마음이 어떠할까. 별의별 다양할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 같은 견딜

수 없는 아픔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가슴 먹먹함도 있을 것이다. 여동생이 그런다. “오빠, 한국 나오지도 못하고

혼자 있으면서 너무 울지 말고 건강 챙기라.”...

그런데, 사실 나는 그런 큰 슬픔을 느끼지를 못했다. 몇 달 전 어머니를 뵙고 온 까닭도 있을 것이고, 어머니께서

나름 오래 살아주셨기 때문이리라. 또한 이제 어머니는 언제고 가실 분이니 그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의 준비를 한

이유이기도 하리라. 한아름 2층에서 어느 분을 만났다. 나에게 인사를 해오셨지만 내가 천진난만하게 웃음을 띠고

다니자 어찌 그리 웃고 다니느냐?” 한다.

어떤 상황이 되면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당신이 어서 가심이 당신에게도 자녀에게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나의 어머니도 어쩌면 그 예외일 수 없다. 연세가 많더라도 건강하시다면 응당 오래 살아주심이 좋을 것이나 그렇지

못한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빨리 가시라는 말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죽음이 꼭 슬픈 일만은 아닌, 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부터 장례 일정 중간 중간 상황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오늘 아침(12월 6일) 모든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수고하셨다. 이젠 좀 푹 쉬시라는 말을 전하며 너싱홈에 있는 아내를 찾았다.

바쁜 일정이 계속되는 터라 잠시 방문하여 어머니의 소식을 전하고, 전에 하지 못했던 친정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도

9년여 만에 말을 해주었다. 와이프가 쓰러지고 나서 얼마 후 장모께서 사고로 돌아가셨으나, 막 쓰러져 있는 와이프에게

그 이야기를 차마 못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와이프는 친정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가 자신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라며 자책을 한다. 딸이 쓰러진

소식을 듣고 마음의 상처를 받아 돌아가신 것이라고.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말은 차마 또 하지 못했다. 사고로

돌아가셨다면, 그 사고의 아픔이 고스란히 와이프에게 전달되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해주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은 언제고 아무 때고 갈 수 밖에 없으니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주시고 가져가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며 살아가자고.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은

하나님 주시는 평강이라고. 오래 살고 적게 살고에 비중을 두지 말고 살아있는 순간이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에게 우리의 삶을 맡기며 살아가자고.

오늘밤, 아니 어쩌면 한동안 아내는 친정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가슴 아파할 생각을 하니 내 가슴 또한 먹먹해 온다.


-해처럼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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