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신문 칼럼

복음은 임마누엘입니다

해처럼달처럼 2018. 12. 19. 20:37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태복음 1:21-25

 

 

원래 예수라는 말은 헬라어이고 구약 히브리어로는 여호수아입니다.

(히브리어: ישוע 예슈아, 그리스어: Ίησους, Χριστός 예수스 크리스토스)

여호수아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원래 여호수아의 이름은 구원이란 뜻을 가진 호세아였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그의 원 이름인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로 바꾸어주었습니다(13:16). 그러므로 예수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에서 그리스도라는 말은 크리스토스라는 헬라어로써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란 말을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고 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예수님 당시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하는 말은 2천년 전에 오신 나사렛의 역사적 예수가 바로 참된 구원자, 그리스도로 오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 태어날 당시의 동방박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 2장에 나오고 있지요.

실제 동방박사들은 몇 사람인지는 모릅니다. 김근태 목사는 이들이 다니엘의 후손들이라고 합니다. 이미 일찍이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기름부음 받은 자가 올 것을 예언하셨고, 다니엘은 이것을 믿음으로 그의 후손들에게 유언하고 그의 후손들이 예수의 오심을 알고 찾아와 경배하였다는 것입니다. 마치 애굽의 요셉이 죽으면서 자신이 죽으면 출애굽할 때에 자신의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고 유언했던 것과 같습니다.

 

어쨌든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이 별이 구세주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임을 알고 경배하러 왔던 것입니다. 이들의 눈에만 이 별이 보였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이 별을 볼 수 있었고, 또 웬 별이 저리도 찬란하게 빛나느냐고 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 별을 구세주의 별로 보았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일찍이 발람 선지자는 민수기 24장에서 야곱으로부터 한 별이, 한 왕이 나올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야곱의 자손들은 누구나 다 그 이야기를 들었고,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다니엘을 통해서도 구세주요, 기름부음 받은 자가 올 것을 천사를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이 언약의, 약속의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고 있거나 붙잡고 있지를 못했습니다.

 

기독교는 언약의 종교입니다. 약속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인내하며 기다리는 신앙에 익숙해 있는 것입니다. 은사의 열매 중에 오래 참음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언약의 약속의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며 인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1년 후에 이루어질 수도 있고, 몇 백 년 후에 이루어 질 수도 있습니다. 나의 살아생전에 이루어짐을 못 본다고 해서 그 약속이, 그 언약이 해지되거나 캔슬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동방박사들은 이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산 사람들이었고, 그 약속의 말씀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살다가 그 별을 본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이 별은 하늘에 떠 있는 별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말씀, 언약이었으며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바라보게 된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위기에서도, 어떠한 고난에서도 이 약속의 말씀을 놓치지 마십시오.

 

남은 약속 재림

이제 하나님의 약속 중 한 가지 남은 것은 재림입니다. 사도행전 111절의 천사들의 말을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하늘로 올리우신 분, 예수님께서 다시금 이 땅에 오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다시 오십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살아 있을 때 오실 수도 있습니다. 몇 천 년 동안 온다하면서 오지 않았다고(벧후 3장 참조) 재림은 없다고 하면 큰 오산입니다. 어느 시에 주인이 와서 게으르고 악한 종들을 심판하실지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 경배

동방박사들은 귀중한 예물을 아기 예수에게 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아끼며 소중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귀중한 예물로 하나님에게 드린 것이 무엇입니까? 막달라 마리아처럼 귀한 옥합을 깨뜨려 드리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또 다시 우리에게 새해라고 하는 귀중한 시간을 주셨습니다. 이 귀중한 시간을 살아가면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언약, 그 약속의 말씀을 다시금 붙잡고, 우리의 가장 귀중한 것을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니, 우리의 소중한 것을 드려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생각하는 것은 임마누엘입니다.

오늘 읽었던 말씀의 내용입니다.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이라고 누가복음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안 좋은 소식이 될 수도 있고, 안 좋은 소식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좋은 소식이 될 수도 있지만, 오늘 이 큰 기쁨의 소식은 모든 백성에게 라고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큰 기쁨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어서 기쁘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리 기쁜 소식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은 그 어떤 것도 아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세상 모든 것 다 떠나가도 그분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고통과 절망과 죽음이라고 하는 비참한 것을 맞이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분이, 하나님이 친히 이 땅에 오신 것이며, 가장 부족하고 죄인 중에 괴수인 나에게까지 오시어서 함께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그분은 지금 이 자리에도 계시고, 여러분들이 앉고 일어서는 그 자리,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그 자리, 잠을 자는 그 순간에도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키시며 함께 하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기쁜 소식이 우리에게 복음입니다.

복음은 예수님 그 자체가 아니라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임마누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