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시 14편
하나님을 믿으라 하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여 보여 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보여 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는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여드릴 수 없다는 말은 첫째로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떤 모양을 갖고 계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이 형상을 갖고 창조되기 전 이미 계셨던, 형상을 갖고 계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존재이신지라 그분은 어느 누구의 형상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무엇의 형상으로도 나타나실 수 있는
분이고, 그 모든 형상 가운데 계신 분이기도 합니다.
로마서 1장 19절과 20절에 보면, 세상 모든 만물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을 하나님이 지으셨기 때문에 그 작품을 보면서 누가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세상에는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중요합니다. 그 중 우리
몸을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은 몸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깊숙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끄집어내어 볼 수 있지만
우리들 마음, 정신은 분명 있음에도 볼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한 로마인이 어느 랍비(선생)를 찾아와 “당신들은 하루 종일 하나님의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 그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시오. 어디 있는지 보여만 주면 나도 그 하나님을 믿겠소.”라고 했습니다.
랍비는 그 짓궂은 로마인이 불쾌하였으나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며 “저 태양을 한번 쳐다보시오”
했습니다. 로마인은 힐끔 태양을 보고 나서는, “그런 바보같은 얘기 마시오. 태양을 똑바로 쳐다볼 수는 없잖소?”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그대가 만일 하나님이 지으신 많은 창조물 중 하나인 태양도 제대로 불 수 없다면, 어떻게
위대하신 하나님을 한 눈에 볼 수 있겠소?”라고 응수했습니다.
좌우로 고개를 돌려 눈에 보이는 것들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건물들이 보일 것이고, 탁자, 시계, 자동차, 비행기 등
수많은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우연히 생기지 아니하고 사람이 만들었듯이 이 세상도 그와 같습니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히 3:4),
우리 몸 안의 심장을 한번 보십시오.
사람의 심장은 1분에 평균 60~70회 정도 수축하며 활동을 합니다. 하루에 평균 약 10만 번 수축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70년을 산다고 할 때, 심장은 자그마치 26억 번을 수축합니다.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80㎖의 혈액을 온몸으로
흘려보낸다고 합니다. 그 피의 양이 하루에 8천ℓ, 1년이면 약 292만ℓ로, 3만2천ℓ 유조차 약 92대의 분량입니다.
심장이 한 시간 동안 내는 힘은 75kg의 사람을 3층짜리 건물 꼭대기로 올리는 힘이라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태어난 후부터 죽는 순간까지 심장이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심장이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입니까?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가 정확히 1cm만 가까워도 모든 생물이 타 죽고, 1cm만 멀어져도 얼어 죽습니다. 지구가
똑바로 서 있지 않고 약간 기울어져 있기에, 사 계절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기울지 않았더라면 적도 부근에서는
모든 생물이 타 죽었을 것이고, 극지방에서는 너무 추워서 아무런 생물도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몇 날 몇 밤을 새워 말해도 끝이 없습니다. 철학자 플라톤(Platon)은 말했습니다. 전 세계 인구가 모두 힘을 합해도
파리 한 마리를 만들 수 없다. 파리는 고사하고 하루 살다가 사라지는 하루살이도 만들지 못합니다. 그 하루살이는 하루 살다
가기 위해 땅속에서 2년 동안을 성충으로 지냅니다. 그 기이한 삶을 어느 누가 만들어 냅니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것보다 계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나의 살아있음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증거이며, 호흡을 주고 계시는 이 자체가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이 자그마한 페이퍼 한 장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마는 세상 만물의
존재와 지금 나의 존재가 바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시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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