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신문 칼럼

부활절 -이스터-김소연

해처럼달처럼 2019. 6. 15. 04:21


부활절 -이스터

 

Easter는 처음부터 그 기원이 칼데아에 있었다. ‘이스터는 하늘의 여왕인 벨티스(Beltis)(50:2)의 칭호 중의 하나인 아스타르테(Astarte)인데, 그 이름은 니느웨 사람들에 의해 발음되는 이쉬타르(Ishtar)이다. (Bel; 50:2)과 아스타르테에 대한 경배는 드루이드(Druid), 작은 숲의 제사장들과 함께 브리튼 지역에 매우 일찌감치 도입되었다. 51일은 로부터 유래하여 아직도 달력에서는 벨테인(Beltane)으로 불리고 있다.

우리는 혹은 몰록’(7:43)(이 두 칭호는 동일한 신에게 속한다.)의 경배가 브리튼 섬의 북쪽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시행되고 있었음을 입증해주고 있는 풍습들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지켜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고 고대 영국의 풍습에 조예가 깊은 Lord john Scott‘The Right Hon'에서 지적하고 있다.

매년 벨테인, 51일에는 많은 남녀들이 고대 드루이드 교도들의 풍습인 돌로 만든 원 주위에 모였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평전(로베르토 리돌피) 325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추기경이 ’5월 초하루 축제일에 반포하려고 작성해 놓은...’ 로마 카톨릭이 51Beltane(2월의 Valentaine day처럼)이라는 절기를 특별히 취급했음을 시사하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중앙에 불을 피웠으며 각자 목동의 모자 안에 귀리 케이크 한 조각씩을 넣었다. 그들 모두는 앉아서 눈가리개를 하고서 모자 안에서 한 조각씩 꺼냈다. 그 안에는 이미 한 조각이 검은 색으로 칠해 있었는데, 그 검은 조각을 집은 사람은 누구든지 간에 원 중앙에 있는 불 위를 뛰어넘어 통과하고 벌금을 지불해야 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옛 바알 숭배의식의 일부분으로써 그 때 제비가 뽑힌 사람은 희생 제물로 불에 태워졌었다. 오늘날 불을 통과하는 것은 바로 그 바알 의식을 대표하는 것이며, 그 벌금을 지불하는 것은 희생자를 구속(다시 사들임)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바알이 이처럼 경배를 받았다면 그의 배우자였던 아스타르테(Astarte) 또한 숭앙받았을 것이다. 니느웨에서 그 이름이 이쉬타르(Ishtar)였던 이 아스타르테에서 매년 4월마다 열리는 이스터(Easter)라는 종교 축제가 탄생하게 되었으며 이스터-모나쓰’(Easter-monath)라고 불렸었다.

교회사에서 3, 4세기에 이스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축제는 현재 로마 교회에서 지켜지고 있는 축일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이 축제가 이스터라는 이름이 아닌 파스크’(Pasch), 즉 유월절(passover)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이 명절은 비록 사도들이 제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독교인임을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념하기 위해 지켜졌었다. 이 축제는 원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유다교의 유월절과 동일한 때에 거행되었는데, 2세기 말엽인 터툴리안(Tertullian) 시대에는 323일이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이 축제는 우상 숭배와 관련이 없었으며 축제 전에 사순절 기간도 없었다.

마르세이유의 수도승 카시아누스(Cassianus)5세기경 초대교회와 자기 시대의 교회를 비교하면서 이렇게 적고 있다.

“40, 즉 사순절을 지키는 풍습은 초대교회가 순수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동안에는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풍습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40일간의 금욕은 바빌론 여신을 숭배하는 자들로부터 직접적으로 빌어온 것이다.

일년 중 봄에’ 40일간의 금욕을 실시하는 풍습은 오늘날 예지디스(Yezidis)들이나 코오르디스탄(Koordistan)의 이교적인 마귀 숭배자들에 의해 여전히 지켜져 오고 있다. 이들은 이 풍습을 그들의 스승인 바빌론 사람들로부터 상속을 받았다.

이와 같은 사순절은 이교도 멕시코인들에 의해서도 봄에 지켜졌는데 이는 훔볼트(Hum boldt)가 멕시코의 풍습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Humboldt's Mexican Researchs. V. I p.93)

-“춘분이 지난 후 3일이 되면... 태양을 기념하여 40일간의 엄숙한 금식이 시작되었다.”- 윌킨슨의 이집트인(Wilkinson's Egyptian Antiquitis. V.i. p. 404)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와 같은 사순절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집트에서도 지켜졌다. 랜드시어(Landseer)시바인 연구’(Sabean Researches. p.112)에는 이집트인들의 사순절이 위대한 중보의 신인 아도니스’, 즉 오시리스를 기념하기 위해 분명히 열렸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동시에 프로세르피네(proserpine)의 강탈 사건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기념된 것처럼 보인다. 율리우스 피르미쿠스(Julius Firmicus)에 따르면 프로세르피네를 위한 애곡이 40일 밤 계속되었다.”고 한다.

또한 아르노비우스(Arnobius)에 따르면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카스투스(Castus) 혹은 신성한금식이라고 불리웠던 이교도들의 이러한 금식을 1차적으로 이방 여신 케레스(Ceres)의 오랜 금식을 흉내낸 것으로 간주하였다고 한다. 이 케레스는 지옥의 신 플로토(Pluto)에 의해 그녀의 딸 프로세르피네가 끌려가 없어진 것 때문에 너무나 슬퍼서”(Vialentia moerosis) 오랫동안 먹기를 거절했다고 한다.

바쿠스’, 즉 아도니스와 프로세르피네의 이야기들은 원래는 다르지만 서로 잘 맞도록 짜맞추어졌기 때문에 그 결과 바쿠스는 리베르(Liber), 그리고 그의 아내 아리아드네(Ariadne)는 리베라(Libera), 이는 프로세르피네의 이름들 중의 하나(Ovid, Fastu, Lib.iii, I 512, Vol.iii.p.184)로 불렸으며, 40일간의 금식기간은 후일 이 두 사람 모두에게 관련된 것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교도들 가운데 이 사순절은 담무즈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위대한 연례 축제에 없어서는 안 될 서곡이었다.

매년 열리는 이 축제는 애도와 환희가 번갈아가면서 이어지는 것으로 여러 나라들에서는 기독교축제였던 파스크; Pasch(유월절)’보다 상당히 늦게 열렸다. 팔레스타인과 앗시리아에서는 6월에 열렸는데 이 때를 탐무즈의 달이라고 불렀다. 이 축제는 이집트에서는 5월 중순경에, 그리고 브리튼에서는 4월쯤에 열렸다. 스가랴 75절은 바벨론 땅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했던 유다인들에게 하나님이 따지시는 대목이다. “그 땅의 모든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일러 말하라. 너희가 그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을 때 너희가 나를 위하여 금식하였더냐? 정녕 나를 위한 것이었느냐?”

또한 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집트에서 뿐만 아니라 주의 성전에서의 그들의 행위를 추궁하시는 말씀이 예레미야 7장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특히 718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자식들은 나무를 모으고 아비들은 불을 지피며 여인들은 가루 반죽을 하여 하늘의 여왕(The Queen of Heaven)과자를 만들며, 다른 신들에게 술 제물을 부어 그들이 나로 격노케 하였느니라.”

이러한 역사를 지닌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가 로마교회를 통해 거의 1500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오늘날 개신교라 자부하는 기독교 안에 보금자리를 찾아 안주하고 있다. 로마교회는 그 당시(AD 303년 이후) 그 해가 어떤 해인지는 여기서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

이러한 이교도들을 명목상의 기독교 안으로(더 정확히는 기독교라는 종교’) 회유시키기 위해(복음화가 아니라) 로마는 그들의 상투적인 전략을 구사하여 기독교와 이교도의 축제가 합성되도록(오늘날의 종교통합) 조치를 취했는데(Ecumenical movement는 이미 그 때부터 시작) 복잡하지만 매우 능숙한 방식으로 달력을 조정함으로 어렵지 않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이미 우상숭배 안으로 깊숙이 잠겨버린 기독교와 이교주의를 붙잡아 매는 일은 이 축제뿐 아니라 기타 여러 가지 많은 점에서 아주 일반화 되어 버렸다.

이와 같은 양자 합성을 이룩한 사람은 리틀 디오니시우스(Dionysius the little; AD 525년경)로 알려진 수도원장이었는데 현대 연대학자들이 입증한 것처럼 기독교 시대의 시작, 혹은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가 원래 시점보다 4년이나 옮겨진 것도 이 사람의 공적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일이 무지 때문이었는지 의도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가 원래보다 만 4년 뒤로 늦춰진 것은 의심할 나위 없는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기슬러(Gieseler, Vol, i. p 54)는 위의 진술을 지지하는 권위자들로 G.A. Hamberger, Jo. G. Jani를 꼽고 있다. 또한 모든 표준 영국 연대기 역시 이 진술을 일반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스터에 관한 달력의 배경은(현대 교회사가들은 이 일을부활절 날짜를 정하기 위해 분쟁했던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첨예한 대립을 주장하지만) 중대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교회 안에는 엄청난 부패가 야기되었고, 사순절 금욕과 관련하여 고약한 미신들이 도입되었다.

아르노비우스와 클레멘스 알렉산드리누스가 묘사한 신성한 금식’, 혹은 이교도의 사순절 기간 중 저질러졌던 잔학행위들을 한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가증한 짓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타락한 교회의 느슨한 헌신을 부추기기 위해 이집트로 도움을 청하러 갔던그러한 사람들의 기독교에 대해 얼굴을 붉힐 것이 틀림없다. 그들은 그처럼 오염된 원천에서 뭔가를 빌어오지 않고서는 교회를 부흥(?)”시킬 다른 좋은 방도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성경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고, 성경을 감추어 둔 탓이고, 따라서 성경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고, 읽는 것이 발각되면 이단으로 몰려 화형에 처해졌고, 그들은 결국 하나님도 하나님의 말씀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고, 믿지 않는 말씀에 두려움이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과 관련된 불합리한 일들과 가증스러운 일들에 대해 초기의 기독교 저술가들은 조롱을 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들의 사순절을 기독교로 도입하려고 생각했다는 것은 악의 표적이었다. 이는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미신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는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악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왜야하면 이를 계기로 기독교는 더욱 우상 숭배 속으로(하나님보다 앞세우는 것은 모두 우상 숭배이다. 목사, 집회, 자기 열심, 마르다 전문 양성기관이 되어버린 교회 등 다 우상이 되어 버렸다. 예수님이 쫓겨나셨는지도 모른다) 빠져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로마에서조차도 흥청망청대는 카니발의 술잔치에 뒤이어 이어지는 애곡의 사순절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기독교의 파스크(유월절) 직전 금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을 때조차도 이 금식이 이교도들의 종교의식과 일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즉 이동화 과정은 점진적인 과정이었던 것이다. 니케아 공회 개최 이전에 로마교회에서 얼마동안 금식을 했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는 않다. 그러나 니케아 공의회가 끝난지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에도 금식기간은 3주일을 넘지 않았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

기슬러는 유월절을 지키는 풍습에 관해(이스터가 아닌) 2세기경의 동방교회에 대해 말하면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그 때(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유월절 때) 그들은(동방의 그리스도인들) 아마도 유대인들처럼 8일간에 걸쳐 뜸씨(누룩) 없는 빵을 먹는다. ... 부활을 기념하는 연중 명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매 일요일마다 부활이 기념되었기 때문이다. , 예배가 그것이다.”

 

AD 450년경 이 문제에 대해 소크라테스(Socrates, Hist. Eccles. Lib. V. cap. 22. p.234)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기품있는 도시 로마의 주민들은 이스터 전 3주간을 금식하였다. 그러나 아스타르테에 대한 경배가 증대되어감에 따라 갈대아의 사순절 기간인 6주 전체가 혹은 40일간이 금식기간으로 정해지기에 이르렀다. 결국 서로마제국 전 지역에 걸쳐 사순절은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절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즉 종교적인 것이라기보다(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도)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 기념 절기처럼 되어 버렸다.

이러한 조치는 AD 519년경 로마의 감독이 호르미스다스(Hormisdas)였을 당시 아우렐리아(Aurelia)에서 열린 공의회에 의해 취해졌다. 이 공의회는 사순절이 이스터 이전에 지켜져야만 할 의식이라고 선포하였다. 며칠 후 디오니시우스 황제에 의해 달력이 조정되었는데 이는 다름 아닌 공의회의 결정사항을 시행에 옮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공의회의 포고는 모두 동시에 시행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6세기 말엽에 이르러 새로운 달력의 사용을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결정적인 시도가 브리튼(영국)에서 있었다.

기독교 파스크(유월절)와 로마 교회가 강요했던 이교도 이스터와의 시간차는 로마 강압정책이 있었던 그 당시 약 한달 정도였다. 앵글로색슨족의 축제 혹은 칼데아 여신을 위한 축일이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열렸던 기념일인 파스크를 대체하게 된 것은 폭력과 피흘림에 의해서였다. 이것이 바로 이스터의 역사이다.

이스터 기간동안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민속들은 이 명절이 바벨론에서 유래되었다는 역사의 증거를 확인해 주고 있다. 성 금요일(Good Friday)의 십자가 무늬가 찍힌 빵과 파스크, 혹은 이스터 선데이(Easter Sunday)의 물들인 달걀 등은 모두 칼데아 종교의식에서 나온 것인데 오늘날도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

롤빵’(buns, 동일한 이름)은 아테네시의 창설자인 케크롭스(Cecrops) 시대, 즉 기원전 1500년경에 하늘의 여왕인 이스터 여신을 경배하는데 사용되었다. 브라이언트(bryant)(Mythology, Vol, i. p.373)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들에게 바쳐졌던 신성한 빵 중 한 종류는 아주 오래된 시절부터 내려온 것으로 보운'(boun)이라고 불렸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는 엠페도클레스에 의해 바쳐졌던 <Laertius, p. 227. B>에서 그 제물에 대해 말하면서 그 핵심요소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는 보운(Boun)이라고 불리는 신성한 케이크 중 하나를 바쳤는데 그것은 고운 밀가루와 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와 같은 제물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자식들은 나무를 모으고 아비들은 불을 지피며, 여자들은 가루 반죽을 하여 하늘의 여왕을 위해 케이크를 만든다.”(7:18)

이곳에서 예레미야가 사용한 이 단어로부터 'bun'이라는 단어가 유래한 것처럼 보인다. 그 히브리어 단어는 모음기호를 붙여 읽으면 카반(khavan)인데, 그리스어로 때로는 카판오스(kapan-os)가 되었다. 때로는 카본(khabon)이 되었다.

첫 번째 카반은 한음절로 발음되면 khavan 인데 이는 을 뜻하는 라틴어 파니스’(paris)가 되었으며, 마찬가지로 카본은 khvon으로 발음되어 ’(Bon) 혹은 ‘Bun'이 되었다. 영어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단어인 ’Loaf'(빵덩어리)도 역시 동일한 형성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앵글로색슨어로 그것은 ‘Hlaf’였다.

 

오늘날은 십자가를 새겨넣은 빵(케이크 혹은 과자)을 아스타르테의 축제 때 제물로 바치는 대신 그것을 먹는다.(Eucharist의 근원) 그러나 이러한 풍습이 어디서부터 유래했는가는 분명하다고 하겠다.

 

부활절 달걀의 기원 역시 마찬가지로 분명하다.

옛 드루이드들은 그들의 성직의 신성한 상징으로써 달걀을 지니고 다녔다. 아테네에서 열렸던 디오니수스(Dionysus) 제전, 즉 바쿠스의 신비 종교 의식에서는 저녁 의식의 일부로 달걀을 봉헌하였다. 인도의 우화에서는 이 달걀(이 달걀은 세계 달걀로 불림)을 금색으로 만들었다. 일본 사람들은 그들의 신성한 달걀을 놋쇠 빛깔로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오늘날도 물들이거나 색을 칠한 달걀이 신성한 종교 축제에서 사용되고 있다. 고대에는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의 종교의식에서 달걀이 사용되었으며 그들의 신전에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매달려 있다.(이집트인들은 헬리오폴리스; Heliopolis의 달걀, 그리스인들은 티폰의 신성한 달걀; Typhon)

이 신성한 달걀들은 이집트로부터 유프라테스강 지역으로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 현재 러시아 아트 중의 한 요소가 되고 있는 ‘Faberge Eggs'가 바로 그 열매이다. 고대 시인들 역시 바벨론 사람들의 신비의 달걀에 대한 우화를 시에서 많이 다루고 있다. 이집트인으로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로마에 있는 팔라틴(palatine) 도서관 책임자였던 히기누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엄청난 크기의 달걀이 하늘로부터 유프라테스 강으로 떨어졌다고 전해진다. 물고기들은 이것을 강둑으로 굴려갔고, 비둘기들이 그 위에 앉아 부화하였는데 그곳에서 후일 시리아 여신으로 불렸던 비너스가 나왔다.”(Hyginus, Fabilae, pp.148-149)

이 비너스가 다름 아닌 아스타르테인 것이다. 이리하여 그 달걀은 아스타르테, 즉 이스터의 상징들 중 하나가 되었다. 따라서 키프러스에는 비너스, 즉 아스타르테를 숭배하기 위해 선택된 의자들 중 하나가 있는데 엄청난 크기의 달걀 하나가 거대한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신비로운 아스타르테 달걀의 숨은 뜻 가운데 한 가지는 대홍수 때의 방주와 관련(Bryant, Vol. iii. p.161)이 있는데 당시 전 인류는 마치 병아리가 부화하기 전 달걀 안에 갇혀 있듯이 방주 안에 갇혀 있었다. 어떻게 해서 이처럼 놀라운 상징이 그와 같은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그 첫 번째 답변은 이미 지적했듯이 이교도들의 신성한 달걀은 세계 달걀’(mundate egg), 즉 그 안에 세상을 담고 있는 달걀로 잘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world)은 두가지 분명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하나는 물질적인 땅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그 땅의 거민을 말한다.

달걀(egg)이라는 단어가 방주에 적용되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달걀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바이츠(Baitz)이며 여성형일 경우 바이차(Baitza)이다. 이 단어는 갈대아어와 페니키아어로는 바이트(Baith)와 바이타(baitha)가 되는데 이들 언어에서 이라는 명사가 발음되는 것과 동일하다.

세상을 담고서 물위를 떠다니는 달걀(방주)은 홍수의 물위를 떠다니는 집이었던 것이다. 하늘로부터 달걀이 내려왔다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방주의 건축에 대한 언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신의 입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는 세계 달걀'에 대한 이집트의 신화에는 동일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본다. 인간에게 유익하거나 좋은(기복신앙) 모든 것이 칼데아 신비종교에 등장하고 있으며 바빌론 여신과 어떻게든 관련지어져 있게 마련이므로 방주가 그 안에 품고 있었던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축복은 세상을 문명화시킨 존재요, 세상에 유익을 가져온 존재인 아스타르테라고 여겨졌다. 아스타르테(Astarte)가 대표하고 있는 신격화된 여신은 홍수 후 몇 시기가 지나기까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빌론에 이미 확고히 자리잡고 있었던 윤회설‘(불교, 힌두교에서도)을 통해 그 여신은 홍수 이전 세계에 다른 존재‘(6장 참조)의 화신으로서 살았으며, 홍수를 안전하게 통과했다고 여신 숭배자들을 믿게끔 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궁극적으로, 로마교회는 아스타르테에 대한 이 신비한 달걀을 채택하여 그것을 그리스도의 부활과 바꿔치기 한 후 부활의 상징으로 신성시 하였다. 심지어는 이와 관련해서 기도문을 지정하여 사용토록까지 하였다. 교황 바오로 5세는 그의 미신적인 추종자들에게 부활절(이스터)에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오 주여, 우리가 당신께 간구하오니 당신의 피조물인 이 달걀을 축복하시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그것을 먹는 당신의 종들에게 그것이 온전한 자양물이 되게 하소서. -중략-”(Scottish Guardian, April, 1844)

신비의 달걀 외에도 바빌론의 여왕신인 이스터의 또 다른 상징 하나는 림몬’(Rimmon), 즉 석류였다. ‘석류를 손에 들고 있는 그녀는 흔히 고대의 동전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시리아인 나아만의 주인이었던 다마스커스 왕이 그 안에서 경배했던 림몬의 집아스타르테의 신전이었다. 그곳에서 이 여신은 림몬과 함께 공개적으로 숭배를 받았다.

석류는 씨앗들로 가득찬 과일로 인해 새로운 피조물들의 생식세포가 보존되어 있는 그 배(방주)의 상징으로써 여겨졌다. 이 생식 세포들로 인해 세상은 대홍수가 지나가고 난 후 사람과 짐승으로 새롭게 심겨질 것이라고... 그러나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해보면, 림몬, 석류는 전혀 다른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판명된다.

아스타르테, 키벨레는 또한 이다이아 마테르’(Idaia Mater)라고 불리었으며, 아스타르테 우상 숭배로 가장 유명한 프리기아에 있는 신성한 산()이다(Ida) 이라고 불렸다. 즉 신비종교에 사용되는 신성한 언어인 칼데아어로 지식의 산인 것이다.

따라서 이다이아 마테르지식의 어머니’, 다시 말해 최초로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을 탐내었던 그녀와 그녀의 후손들에게 무서운 대가를 치름으로써 그것을 실제로 얻었던 우리의 어머니 이브였던 것이다.

아스타르테는 하나님의 영의 화신으로서 뿐만 아니라 인류의 어머니의 화신으로서도 경배되었다. 따라서 신들의 어머니이며 지식의 어머니인 존재가 석류 열매를 손에 든 모습(두 손을 내밀고 있는 )으로 묘사될 때 이는 신성한 산 위에 올라온 사람들을 그녀의 신비종교 안으로 입교하도록 초청하는 모습이다. 그 열매가 무엇을 의미하도록 의도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분명하다. 분명히 이 열매는 그녀의 본성 중 하나인 지식과 관련된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지식의 나무’(2:17)의 열매였음이 분명하다.

이다의 여신 추종자들에게 제공된 지식은 이브가 금지된 열매를 먹음으로써 얻게 되었던 그것과 동일한 종류의 지식, 즉 모든 도덕적인 선과 악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이었다. 이와 같은 지식의 어머니로서의 아스타르테를 인간에게 지식과 그와 관련된 축복을 얻게 해 준 위대한 은인으로 바라보도록 사람들은 가르침을 받았다.

카톨릭 교회 역시 로마의 하늘의 여왕에게도 동일한 숭배를 하도록 부추기며, 카톨릭 신자들에게 이브의 죄를 이교도들이 바라보는 축복관점 그대로 바라보도록 유도해왔다.

 

대다수의 유럽 국가에서는 석류가 자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서마저도 림몬이 미신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지켜졌어야 했다. 결국 석류 대신 오렌지가 동원되었다. 따라서 스코틀랜드의 카톨릭 교도들은 이스터 달걀에 오렌지를 덧붙였다. 또한 에딘버그의 길리스 주교는 몇 년 전 부활절날 넝마를 걸친 열 두 명의 아일랜드인들의 발을 씻겨주는 허영에 찬 세족식을 거행하면서 그들 각자에게 달걀 두 개와 오렌지 한 개를 선물로 주었었다. 에덴에 있던 인간을 시험하는 무시무시한 나무의 열매를 대표하는 것으로 오렌지를 사용하는 풍습이 지켜지기 시작한 것은 근대의 일이 아니다. 그 기원은 먼 고대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방에 있는 헤스페리데스’(hesperides)의 동산들은 이 주제에 관해 연구해 본 모든 사람들에 의해 동방에 있던 에덴의 낙원을 그대로 모방한 것임이 인정되고 있다. 아프리카 해안을 마주 보는 대서양의 섬들 위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전설적인 장소는 베르드(Verd) , 혹은 카나리 군도 아니면 그 그룹 중 어떤 섬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신화에서 그처럼 철저하게 지켜졌다는 신성한 나무 위의 황금색 열매는 다름 아닌 오렌지였다.

 

, 이제부터 독자 여러분은 다음의 이야기에 잘 주목하여 보자.

이교도 고대 신화에 따르면 축복받은 자들의 섬들’(성경대로라면 저주받은 자들’)에 있는 그 기쁨의 동산에는 인류의 은인이신 분께서 그들의 충성을 테스트 하려고 보관해 놓으신 신성한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함으로써 그 은인에게 그들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도록 유혹한 뱀은 없었다고 한다.

반대로 인간들로 그 고귀한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그 열매를 철저히 지키고 인간의 손이 닿지 못하도록 했던 자가 다름 아닌 마귀의 상징이요, 악의 통치자요, 인간의 원수인 그 뱀이었다는 것이다.(Behold, 결국 하나님이 그 뱀, Satan이라는 뜻이다.)

이교도 메시야의 한 형태인 헤라클레스(초기의 헤라클레스가 아니고 그리스의 헤라클레스임)가 인간의 불행한 상황을 동정하여 그 뱀을 살해했는데(, 하나님을 죽였는데, 그렇다. 예수님이 죽어주셨다.) 이 뱀은 인간을 단번에 완전히 행복하고 현명하게 만드는데 꼭 필요했던 그것을 인간이 갖지 못하도록 시기했던 그 자였다고 한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인류에게 그가 아니었더라면 인간들의 힘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바로 그것을 주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마귀가 정반대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인간에게 지식의 나무를 먹지 못하도록 금하신 여호와는 뱀으로 상징되어 있어, 지독하고 사악한 존재로 간주되고 있는 반면에 여호와의 굴레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freedom without God)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인간에게 준 자, 즉 헤라클레스의 이름으로 등장한 사탄은 선하고 은혜로운 인류의 구출자자로서 기념되고 있다. 실로 불법의 신비(살후 2:7)가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것들이 다름 아닌 이스터(부활절)의 신성한 절기 숭배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 자들이 성경을 변개시킨 이유와 목적, 동기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 나무도 옳다 하든지, 그 열매도 옳다 하든지,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알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