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열매되신 그리스도의 부활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고전 15장 20-23)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에게 있어 필연적인 것이다. 그 분은 생명 자체이시기에 그 분에게 있어 죽음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행 2: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는 그 분은 바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셔서 그에게 붙어 있는 모든 자로 하여금(고전 15:23) 함께 부활의 열매가 되어 부활의 삶을 얻는 것이다.
그러면 그 분, 즉 생명이신 그 분이 왜 죽으셔야 했던가? 어떻게 죽음이 생명 되신 예수님을 죽게 하셨는가 하는 말이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보면 이 답이 나오고 있다.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그 첫째는 하나님께 받은 그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분은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다. 이 설명은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둘째는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이다.
사람은 본시 죽어야만 그 머리가 떨어진다. 살아 있을 때에는 머리가 떨어지지 않는다.
또 하나는 필자가 어렸을 때에도 가족이나 친척이 돌아가시는 경우가 있을 때에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면 돌아가시는 분의 허리 아래 손을 넣고 있다가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것을 보아 왔다. 이는 사람이 죽으면 평소 힘이 들어가 휘어 있던 허리가 사람이 죽으면서 힘이 빠져 바로 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허리에 기운이 다하면 죽는 것이다. 따라서 허리를 못 쓰는 사람은 실상 살았으나 살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되신 예수님은 스스로 머리를 숙이시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명을 다 이루시기 위하여 스스로 죽음을 허락하셨다는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커다란 치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던 강도도 예수님을 향하여 비아냥 대며 모욕하며 희롱하지 않았던가.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마 27:42) - 주님 용서하소서! 저도 그랬습니다. -
그 분은 그 모든 비아냥과 모욕과 희롱을 견디면서 지금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그 말할 수 없는 크신 사랑을 이루시고 있는 것이었다.
그 분은 열두 영도 더 되는 천군 천사를 동원하여 그 모든 것을 반전하실 수도 있었다. 그렇게 자기를 모욕하고 비아냥 대고 희롱하는 저들을 몰살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 분은 그 모든 것을 참으셨다. 아픔도 고통도 땀방울이 핏방울 되어 떨어지는 그 모진 마음의 고통도 감내하셨다. 그렇게 우리를 향하신 그 분의 사랑은 크기만 하셨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 분은 스스로 죽음을 허락하셨다는 말이다. 머리를 숙이시고 죽음을 받아들이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보여 주셨다.(롬 5:8)
우리들 부활의 열매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붙은 우리들도 그 열매를 맺어야 한다. 왜냐하면 첫 열매 이후 열매는 계속 맺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포도나무 한 그루가 몇 년 동안 자라다가 첫 열매를 맺으면 그 다음해 부터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중요한 것은 포도나무에서는 포도 열매가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도나무에서 배 열매를 맺으면 그것은 포도나무가 아니다. 감 열매가 더 좋다고 감 열매를 맺어서도, 사과 열매가 더 좋다고 사과 열매를 맺어서도 안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맺어주신 첫 열매가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 분이 맺은 그 처음 열매를 따라서 우리도 같은 열매를 맺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신앙이 좋고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해 오며 많은 봉사가 있었어도 그것이 어떨 때에는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열매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그 열매를 보아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알 수 있듯이 우리에게서 맺어지는 열매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금 잘못된 열매를 맺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마 5:16 너희 착한 행실을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 착한 행실이 바로 우리가 맺어 나가야 할 열매이다.
첫째, 착한 품성이 되어야 한다.(마 12: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품성을 말한다. (빌립보 2:1-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우리 안에 이 그리스도의 성품이 먼저 선행되지 아니하고는 결코 그 분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노라면서도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 그 분의 성품에 이어 그 분이 행하시고 보여주신 모든 일들, 그 사랑이 진심으로 우리들 삶 가운데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아직 당신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 우리가 그 분에게 붙어 있다면 그 분의 말씀대로 “포도나무가 가지에 붙어 있으면 절로 열매를 맺음같이...” 포도 열매를 맺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붙어 있는 그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차례대로 그 부활에 동참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부활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는 그 분의 성품을 닮아가야 하며, 그 분이 걸어가신 길을 걸어가야 하며, 그 분이 행하신 일을, 그 분이 보여주신 참 사랑을 우리도 행하면서 살아갈 때 비로소 맺어지는 것이다. 에베소서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지금 우리가 계속적으로 맺어나가야 할 개인의 신앙고백인 내적 성품과 외적 신앙생활인 그 열매를 보아 저야말로 참으로 그리스도인이라 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우게 해야 하며 이것이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죽음의 길을 걸어가신 그 분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 저도 당신을 욕되게 하지 않는 삶이 되도록 인도하시며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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