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무엇이 자살로 이끄는가?

해처럼달처럼 2010. 3. 30. 11:49

 

 

 

무엇이 자살로 이끄는가?

 

최진실 씨의 자살에 이어 그녀의 남동생 최진영 씨 마저 자살로 생을 마치며 ‘자살’에 대한 이슈가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유명인들의 자살은 곧바로 많은 이들에게도 쉽게 자살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여 귀중한 생명을 가벼이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생명이 그리도 가벼운 것일까. 죽음이 그리도 쉬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어느 누구에게는 이 문제가 어려울 것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아주 쉬울 수도 있다.

 

필자는 죽음이나 생명에 대하여 공부한 것도 없고, 정신과 의사 또한 아니기에 육체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할 수는 없으나, 다만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이 또한 신학자가 아니기에 깊이 있게 다루지도 못하며 급한 마음으로 몇 자 적어 보고자 한다) 이는 비신앙적인 태도임은 분명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성경은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수많은 곳에서 밝히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라는 말이다.(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36:7-8). 시편 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이는 나의 생명 뿐만 아니라 남의 생명 또한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 사랑하듯 하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을 내 스스로가 끊어버리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반항이요, 나아가 비신앙적인 태도로 밖에 볼 수 없다.

불신자들이야 양심적으로 생명이 귀중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모르기에 너무나도 쉽게 생명을 자해하고 있으나, 교회를 다니는 이들이 스스로 생명을 끊어버리는 일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그리도 쉽게 자살 충동을 느끼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하는가?

 

첫째,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얻은 범죄의 결과이다. 다시 말하면 죄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죽음은 태초에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얻은 범죄의 산물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 결과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죄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으며, 죄의 결과는 사망인지라 죽음이 뒤따라오게 되었다.

그러면, 아담과 하와는 왜 그리도 쉽게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여 죽음을 불러오게 되었는가. 여기엔 다른 신학적인 것이 담겨져 있지만 필자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당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만들어진 처음 사람이었기에 사실 그들은 죽음을 알지 못하였다. 죽음을 보지도 못하였고, 경험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 자신이 낳은 아들 가인이 둘째 아들 아벨을 죽이는 죽음을 목도하게 하며 죄의 삯이 얼마나 크며, 죽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시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죄의식이 없고 떳떳하다면 죽어야 할 이유도 없어지게 되며, 반대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게 될 것이다.

 

둘째, 그 이유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첫번째인 하나님께 대한 범죄 의식이지만, 세부적으로 한 발짝 들어간다면 이는 사단의 유혹이다.

사단은 태초로부터 하나님께 반항했던 존재로 하나님의 피조물을 찾아와 하나님께 반항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을 아주 가벼이 여긴다. 그리고 그렇게 달콤한 소리로 피조물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 유혹의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삶의 고달픔, 무거운 짐, 질병, 각종 아픔 등 죄악의 부산물로 피조물을 유혹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아담과 하와가 사단에게 유혹되어 선악과를 따먹었듯이 그 달콤한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쉽게 목숨을 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달콤한 유혹을 못 이겨 목숨을 끊는 것 보다는 지금의 삶이 견딜 수 없을만큼 힘들고 어려워도 잘 견뎌내면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셋째,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없음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 분의 섭리를 깨닫는다면, 그리고 그 분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며 어떻게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 예비하고 계심을 안다면 그리 쉽게 자신의 생명을 끊어버리는 우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 자살은 한 마디로 비신앙적인 태도에서 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롯 유다 역시 죄의식을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죽었기도 하거니와 그에게서 신앙적인 요소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맺는말로 우리 신앙인들은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며 생명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마침 고난 절기를 당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이 모든 범죄의 부산물과 죄악들, 그리고 우리들 안에 있는 죄의식마저도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죄의 문제를, 다시 말하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신 것을 믿고 주어진 삶을 충실히 감당하고 생명을 귀히 여겨 나가는, 고통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나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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