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Message

오늘 내가 먼저 깨집시다!

해처럼달처럼 2009. 4. 13. 04:45

오늘 내가 먼저 깨집시다!

 

빌립보서 2장 1-11절

 

장애아 피아니스트 이희아 양은 밀알선교단 초청으로 이곳 필라델피아에 몇번 와서 피아노 연주와 함께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미주 동아일보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 영생교회선교관에서 있었던 필라 밀알선교단의 밤에 참석했다가 그 자리에서 받았던 은혜와 감동을 다시한번 함께 나눠보기를 원합니다.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많은 교회와 종교 단체 등을 취재도 하곤 했지만, 이 행사에서 제 마음을 때린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이미 여러분 잘 아시는 4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양입니다.
몇년도인지는 기억이 안 나서 잘 모르겠으나, 당시에  그녀는 서울 소재 특수학교인 주몽학교 고등부 3학년에 재학중이었습니다. 당시에 그녀가 연주하면서 말했던 한 토막이 제게 큰 도전과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그 말을 다시 한번 전하면서 우리 모두에게도 감동과 도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피아노를 배우면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며 피아노를 배웠다면 오늘의 이 자리, 나라고 하는 존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이 한마디가 1천여명이 넘게 참석했다는 그날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신문사에서 매주 수요일 드리는 예배에 저로 하여금 자청해서 설교하겠다고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이 자리 뿐 아니라 비단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해야하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이희아양이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고자 했다면 그녀 말대로 오늘의 그녀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열손가락 가진 자들과 4손가락의 그녀. 그녀는 이미 외적인 면에서 지고 있었습니다. 4손가락이 결코 10손가락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녀는 무릎아래 다리도 없습니다. 어떻게 정상적인 사람들과 경쟁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그녀가 행한 방법은 오직 한가지였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열 손가락 가진 피아니스트를 경쟁의 눈으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오늘 그녀가 행했던 이 방법은 오늘 우리 모두가 해야 할 방법이며, 하나님 또한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당신만을 바라보고 계시기를 원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소망하는 어떤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열심히 공부했고, 스승에게서 부지런히 배웠습니다. 어느 날 다른 학생들과 더불어 발표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친구 학생들과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그 학생은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최선을 다해서 연주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청중들이 박수를 치며 잘 했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이 학생은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청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자기를 가르쳐 준 그 선생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순간 그 학생은 주눅이 들었습니다.  선생이 못마땅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청중들이 잘했다고 박수를 치더라도 지금 이 학생에게는 선생의 잘 했다는 격려의 그 한 마디가 더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누구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수시로 수많은 경쟁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딛고 넘어서야 할 그런 사람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때는 그 사람을 짓밟고 짓뭉개고서라도 넘어서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깨뜨려 부수고 싶습니다.
그 사람만 아니었더라면, 그 사람만 없었더라면, 내가 더 좋은 자리에, 내가 더 귀한 자리에, 높은 자리에 설 수 있었는데 하면서 분을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그런 처지에 처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희아양의 방법은 그게 아니었고, 하나님 또한 그것을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 말씀 빌립보서 2장 1-11절 말씀을 봅니다. 6절 이하의 말씀처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온갖 허물과 죄로 얼룩진 우리를 다 멸하실 수 있는 그런 능력있는 분이셨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쳐 복종시키며 온간 조롱과 멸시와 고통을 받으시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하셨던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오늘 부서져야 할 사람은, 오늘 깨어져야 할 사람은, 오늘 짓뭉개고 짓밟고 낮아져야 할 사람은 나의 경쟁자 그 사람이 아니라 곧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먼저 깨어져야 합니다. 오늘 내가 먼저 낮아져야 합니다. 오늘 내가 부숴져야 합니다. 오늘 나는 그 사람 때문에 오히려 짓뭉개져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더니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9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 이름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원하시고 계십니다. 내가 먼저 낮아지십시다. 내가 먼저 깨집시다. 내가 먼저 부숴지십니다. 내 알량한 자존심도, 내가 가지고 있다 하는 그 알량한 것들로 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합시다.
사도 바울 선생도 예수 그리스도을 알고 난 후 그 고상한 지식으로 인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배설물 같이 아낌없이 버렸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5장 6절에서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했습니다.
우리도 그와같이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존귀히 여겨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친히 나의 대적을 멸하시고 나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혹시 지금 낮은 자리에 계십니까? 그것 때문에 마음 아파 하십니까?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기뻐하십시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것입니다. 지금 상처받고 깨지고 부서진 가운데 계신 분 있습니까? 그것으로 인해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이 친히 싸매시고 위로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딛고 넘어서야 할 경쟁자가 있습니까? 그것으로 인해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친히 원수를 갚으시고 시편 23편의 말씀처럼 그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 앞에 큰 상을 베풀어 주실 때까지 말입니다.

 

 

이희아 양의 사진은 사진방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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