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Message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해처럼달처럼 2009. 4. 14. 12:01

 

마태복음 22, 누가복음 20:24-25


방금 봉독한 말씀에는 돈에 관한 문제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질문의 요지는 사실 세금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책잡으려하는 술책이며 계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그들에게 영적인 놀라운 교훈을 주시고 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를 내는 것이, 아니 내는 것이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갑론을박 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들 속에 어떤 모습으로,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곳에 비유로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비유가 아니면 말씀을 하시지 아니하더라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 동전을 보여달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크게 세가지로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신분의 확실성입니다.
돈에는 화상과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 화상과 글자를 보고 그 돈이 어느 나라 돈이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3:2절 이하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니...” 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편지라고 하는 것은 나의 형편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지금 나의 형편과 상황을 알려주면서 지금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옆에서 보는 것처럼 소상하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세상사람 누구나 나를 보고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다, 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확실한 신분을 가지고 그 신분에 걸맞는 생활을 해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바울은 빌립보서 3:20절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하면서 오늘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요, 그 분의 자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분의 자녀라는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담대하게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고 하는 자랑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본래 우리의 신분은 어떠했습니까? 본래 우리는 허물된 자식이요, 죄악의 자식이요 어두움의 자녀요,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죽음 가운데 있었던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극진히 사랑해 주셔서 이 땅에 오사 우리를 대신 해 죽으사 우리를 영광의 나라로 옮겨주신 예수님의 은혜로 살고 있는 우리는 날마다 호흡이 있는 그 날마다 그 분을 찬양하고 그 분으로 인해 기뻐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돈에는 화상과 글이 새겨져 있듯이 오늘 우리의 심령과 우리의 삶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내가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라”고 말입니다.  지금 우리 속에는 어떠한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까?

 

둘째로, 제대로 올바르게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돈은 사용되어지는데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돈은 모으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용하게 사용되어지는 데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돈은 잘못 사용하면 일만악의 뿌리가 되지만, 잘 사용하게 되면 수많은 사람을 살리고 수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안겨다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돈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도 천한 자리에도, 소외당한 자리에도 그리고 귀한 자리에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몸은 선한 도구로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동전에는 여러 가지 모양이 있습니다. 이곳은 미국이니 미국 돈으로 설명한다면, 쿼터(25센트), 다임(10센트), 5센트짜리, 페니(1센트), 달라 등 그 용도에 적절하게 쓰기 위해 여러 가지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 각자 각자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적소 적소에 사용하시기 위해 지으셨습니다.
왜 나는 다임으로 밖에는 쓰임받지 못하나? 왜 나는 페니 밖에는 안되나 라고 자책하거나 원망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에게 맞게 하나님은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맡겨 주시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디모데후서 2:20절 이하에 보면 큰 집에는 여러 그릇이 있는데, 금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고, 또 귀히 쓰이는 것도 있고, 천히 쓰이는 것도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다 누구나 귀하게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어떤 그릇이 되어서 귀하게 쓰임받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에 보면,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임이라고, 페니라고 슬퍼하지 마시고, 절망하지도 마시고, 그 용도에 맞게 충성과 최선을 다하시면, 예수님은 열고을 잘 다스린 자나 다섯 고을 잘 다스린 자나 동일하게 칭찬을 해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환난을 잘 견뎌야 큰 그릇이 됩니다.
동전이 처음부터 동전 그대로의 모양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그대로의 것을 주었더라면 우리는 다 그것을 내동댕이 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구리가 섞이고, 스텐레스가 섞인 돌들이나 돌가루를 주워다가 부수고 또 부수고 끝내는 펄펄 끓는 용광로 속에 던져넣어서 형체도 없이 다 녹인 다음에 주물에 넣어져서 각기 모양대로 동전이 만들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아름답게 사용되어지기 위해서는 부숴지고 깨지고 녹아지는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서게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 7장에 보면 흰 세마포를 입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환난과 연단을 통해 정금과 같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는 시험을 달게 받고 감사하게 받고 기뻐하라고  하는 말씀의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해야 되지도 않을 여러 가지 일들까지도 참고 견디면서, 그리스도를 생각함으로 참고 살아갈 때에 우리의 삶에 승리가 있을 줄 믿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을 증거하는 삶이 되시고, 어디서든지 귀하게 아름답게 사용되어지는 성도들이 다 되어 하나님께 영광돌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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