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Message

샘물을 파라

해처럼달처럼 2009. 4. 22. 20:58

샘물을 파라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아모스 8:11)

 

어릴적 시골에 살 때 이웃집과 우리 집 사이로 우물이 있어서 양 집이 우물 하나로 함께 생활을 해왔습니다.  시골에 가게 되는 일이 있으면 내 소시적 추억이 있는 그 집을 들려보곤 합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서부터 왜소해 보이는 마을은 모든 것들이 이렇게 작았었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특히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는 시냇물은 여름 장마철이면 건너지 못할 정도로 큰 개울이었고, 물고기를 잡아먹던 일, 학교가던 길에 한 번 떠내려 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은 개울폭도 좁아지고 한가운데 졸졸 흐르는 물이 마치 작은 샘물에서 흘러 나오는 물줄기 정도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본래 마을은 그 모습 그대로이지만 작게 보이는 까닭은 나 자신이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자신의 성장을 가져오는 사람은 여러 가지 문제나 환경들이 작게 보일 것이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될 것이나 자기 성장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같은 여건 속에서도 더욱 심각한 장애가 될 수 있고, 불만과 불평의 요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단한 자기 노력, 수고, 땀흘림, 이러한 것은 언젠가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열매로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줄 것입니다. 심는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철저한 섭리아래 그 법을 터득하고 경험한 사람은 오늘도 여전히 땅을 일구고, 자신의 손으로 수고를 하며 내일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어느 학원 소개를 하는 전단지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남만큼 해서는 남보다 뛰어날 수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보다 뛰어나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해야 합니다. 남보다 많이 갖기 위해서도 더 많은 노력과 열성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세대를 보면서 이 세대가 얼마나 목마른 세대인가는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어느 사람을 보나 삶에 찌들고, 피곤하여 목마르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이 세대를 어찌 ‘목마른 세대’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우리는 왜 이렇게 목마른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요?

 

첫째로, 사람들이 자기 샘을 파지 않기 때문입니다.
각자 자기의 샘을 파서 자기도 먹고 가족들도 먹고 나아가 나누어 주는 삶이 될 때 우리는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샘을 파야 하는 수고가 싫어서 남이 파놓은 샘을 빼앗고, 훔쳐먹는, 나아가 샘을 잘 파는 사람들을 시기하고 투기하기 때문에 악순환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요즈음처럼 세계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때가 없을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경제적으로, 신의 면에서도 모든 것이 땅에 떨어져 짓밟히고만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오게 되었나요? 각자가 맡겨진 본분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샘을 파지 않기 때문입니다. '땀흘림의 미학'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자기 성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끊임없는 자기 노력이 있을 때만이 자신의 삶에 만족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자기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부정과 부패를 가져오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샘물은 퍼낼수록 점점 좋은 물을 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샘물구멍이 막히게 되고 고여있는 물조차 썩게 됩니다. 자기 노력과 성장이 없는 사람이 마치 이와 같습니다.

아이디어 창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그마한 것부터라도 아이디어를 내놓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아이디어도 나오게 됩니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다"라는 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살빼기 위해 땀 흘릴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며 땀을 흘리면 더 많은 좋은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가장 중요한, 사람들 마음속에 있어야 할 사랑의 샘물이 메말라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모든 노력들과 수고를 한다 할지라도 그 행하는 이의 마음에 참 사랑이 없고, 진실함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결코 좋은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명예를 위해 베푸는 거짓된 사랑, 거짓된 인사도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들 삶에 배어 있는 거품, 거짓, 모순을 버려야 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 진실함으로 자신을 내어 놓고 대화하며 삶을 가꾸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진실과 공평, 공의가 하수 같이 흐르는 나 자신을 먼저 만들고, 가정을 만들고,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입니다. 그리 하기 위해서는 내가 한 발 양보하는 '양보의 미덕'이 있어야 합니다.
샘물이 풍족한 자는 나누어 줄쭐 알고, 또한 샘물을 받는 자도 감사히 받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할 줄 아는 근본된 삶의 윤리와 도덕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도 자꾸 해본 사람만이, 나누어 줘 본 사람만이 더 풍성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이 메마른 가운데 아무리 도덕성과 윤리 등을 외쳐대도 그것은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메마른 심령, 강팍해진 우리 심령의 밭을 기경하고,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다시금 찾아 회복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의 근본은 ‘사랑’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들을 내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계명의 대 강령인 것입니다.
참 사랑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그 아들을 통하여 그 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증거는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히 임할 때, 그리고 그 분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 될 때만이 이 기근과 주림과 목마름의 삶은 해결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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