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Message

추수감사

해처럼달처럼 2014. 11. 23. 16:02

묵도 빌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본문 살전 5 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신명기 16

11.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언제나 기뻐하고 감사하며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몸이 아픈데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나요?

당장 생활이 어려워서 빌 때문에 빌빌 거리며 사는데 감사할 수 있나요?

솔직히 어려운 일입니다. 오히려 우리들은 그런 사람들을 본다면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냐고 비아냥거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이 하나님 안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 원하시고 또 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먼저 설교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덕이 안되지만, 저는 다윗이 시편 119편에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다 라고 말한 것처럼 그 말씀을 저도 십분 받아들이고 그러한 말을, 그러한 고백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와이프가 중풍으로 쓰러져서 서로간에 고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이 나에게 유익이 되느냐 말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지만, 저희 두 사람은 하나님의 이러한 연단을 통하여 우리들을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하는 하나님의 원대하신 뜻을 알았기에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말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는 저 뿐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하나의 과정 같습니다. 그러한 과정이 없으면, 그러한 연단이 없으면,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그 뜻을 모르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을 하여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40여년이란 과정의 연단을 잘 견디었으면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미래를, 장래를 바라다보기보다 현재를 바라보며 살았던 그들에게 그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온갖 기적을 체험하며 출애굽을 한 그들이,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그러한 커다란 기적을 몸소 체험하고도 모세가 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우상을 만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이해가 안 될 정도입니다.

사람은 보편적으로 좋은 일을 기억하는 것보다 안 좋은 일을 더 오래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은혜는 쉬이 잊어버리고 원수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것이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애굽에서 종 되었던 너희들을 어떻게 구원하여 내었는지를 잊지말라고 하시면서 절기를 정해주고 하나님을 섬겨나갈 것을 이야기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기적으로 그들을 구원해 내었는지를 기억하는 것보다 그 때 애굽에서 지나던 그 때를 그리고 그곳에서 먹고 마시며 살아가던 그 때를 더 그리워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원망하고 불평을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기억보다는 그동안의 나의 삶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여 나왔고, 어떻게 나를 구원하셨고, 어떻게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지에 대한 것을 더 기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14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이 이만큼 먹고 입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셔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닌, 이런 어려운 가운데서도 의와 평강과 희락을 주시는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는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감사는 인간의 언어 중에 가장 아름답고 존귀하고 좋은 말입니다. 이 미국땅에 살면서 우리는 아주 익숙한 문화 가운데 흔히 들으며 사는 말이 댕큐입니다.

"Thank You!", "Thank You Very Much!", "Thanks a Lot!"

댕큐 소리를 들으며 살면 우리들 마음이 훈훈해지고 마음이 열리고 그러잖습니까…

성도들 중에도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① 감사를 전혀 모르고 사는 사람 ② 감사를 하되 옅은 감사 곧 형식적인 감사를 하는 사람 ③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사람 사람입니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감사(感謝)는 모든 절기의 핵심이요, 모든 제사의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감사가 없는 예배, 감사가 없는 찬양은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에게 점차 잊혀져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활이 어려워져 가기 때문입니까? 우리들 마음이 강팍해져 가기 때문입니까?

본문 14,15절에서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고 했는데 감사한 마음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온전히 즐거워 할 수가 없습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 대통령이, 연방에서 정해서 지킨다는 것보다 먼저 성경에서 하나님이 일찌기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추수의 절기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기쁜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만 기뻐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기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주시고 즐겁게 하시려고 감사절을 주신 것입니다.

일년 내내 밭에 나가 일한 농부에게 있어서 추수라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햇볕을 주시고 비를 주시고 좋은 날씨를 주셔서 열매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벼를 재배하여 쌀을 추수하기까지는 여든여덟번의 손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쌀을 ‘팔십팔’이란 뜻으로 미()자를 쓰는 것입니다.

 

하버드대학교 신학 교수인 하비 콕스 박사는 세 가지 유형의 교회에 대하여 논하였습니다. 교회는 ① 자유와 정의를 지향하는 출애굽기의 교회와 ② 감사와 축제의 시편의 교회, ③ 그리고 하늘과 새 땅을 지향하는 계시록 교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출애굽기의 교회, 계시록의 교회의 모습은 가지고 있으면서 왠지 시편의 교회 모습이 결여된 듯 합니다. 그는 개신교의 예배 요소 가운데 축제성이 상실된 다음 하나님의 죽음의 신학이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예배에 있어서 감사와 축제의 요소는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게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축제로 나타납니다. 추수의 감사는 축제요, 함께 기뻐하는 공동체인 절기인 것입니다.

 

인도의 한 어머니가 감사절의 감사의 예물을 들고 교회에 왔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어떤 뜻에서 예물을 드렸는지에 대하여 물었더니, 그 어머니는 아들이 아파서 열심히 기도한 댓가라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아들이 다 나았냐고 물어보았더니 오히려 아들이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들이 죽었지만 이제는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갔으니 감사해서 감사 예물을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감사입니다. 감사의 조건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 하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과 같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 논밭의 식물, 우리의 양, 외양간의 송아지 등에 감사의 근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근원을 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감사가 될 때에 우리는 상황에 관계없이 언제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살전 5:18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범사에 감사하되, 감사가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추수감사절 예배를 오늘 뿐만 아니라 모든 예배와 신앙생활에 있어서 시편의 교회처럼 축제의 분위기를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절은 소외된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14)

본문 14절에서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추수감사절은 소외된 이웃과 함께 나누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수감사절을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즐기는 절기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떠한 절기도 혼자 즐기는 절기는 없습니다. 우리의 식솔뿐만 아니라 나그네와 소외된 우리의 이웃까지도 우리와 함께 즐거워해야 할 절기의 동참자들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우리의 이웃과 함께 나눌 때에 진정한 기쁨이 됩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의 입장에서 보아도, 농사를 지을 때는 내가 짓지만 수확을 할 때는 다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농사는 짓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위하여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추수를 할 때에 곡물을 다 베지 말고,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고,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라고 하십니다(19:9-10)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대로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17)

본문 17절에서 “각 사람이 네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추수감사절은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모든 남자는 일년에 유월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여호와께 반드시 나오되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의 남자는 20세가 되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절기를 지킵니다. 그들이 성전에 나아갈 때는 반드시 예물을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불경건한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이것은 옛날 성전에 올라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예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그 힘대로라는 말은 능력껏, 재력껏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감사절의 예물은 하나님께 드리되 능력껏 드리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때는 우리에게 있는 것을 정성껏 드려야 하며, 없는 것을 억지로 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드릴 수 있는 것을 드리지 않는 것은 잘못이며, 드릴 수 없는 것을 지나치게 드리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러나 진짜 드려야 할 것은 바로 감사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귀한 예물입니다. 아무리 비싼 것을 드려도 정성과 감사가 담겨 있지 않으면 하나님께 기쁜 예물이 되지 못할 것이고, 아무리 값싼 예물이라고 할지라도 정성과 감사가 담겨져 있으면 하나님께 기쁜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에는 흔히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하면 감사하겠습니다.'하는 감사입니다. If 만약 이렇게 이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되면 감사하지 않겠다는 조건부 감사입니다.

둘째는 '- 때문에 감사합니다' 하는 것입니다. 영어의 'because of '의 감사입니다. 당연한 감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정도 감사하기도 힘겨워 합니다.

배은망덕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셋째는 '-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입니다. 영어의 'in spite of' 의 감사입니다.

도저히 감사할 조건이 아닌데 감사하는 것입니다. 가장 성숙한 감사의 모습입니다. 바로 우리가 지향(指向)해야 할 감사의 모습이지요그런데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감사를 드릴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역경 속에서도 감사를 드리는 수준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야만 합니다.

먼저 작은 것부터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별빛을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달빛을 주실 것이요, 달빛을 감사하면 햇빛을 주실 것이요, 햇빛을 감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햇빛도 필요없는 더 좋은 것으로 인도할 것이니 거기에는 하나님의 빛이 영원히 있을 것이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를 생각할 수 없듯이 감사없는 기독교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감사 없는 사람이나 신앙 없는 사람이나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기독교의 덕목이 아니라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신앙 인격이 갖추어진 분이라고 말해도 좋은 것입니다.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감사하라는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감사는 한두 번 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범사에 감사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지난 수요일에 드렸던 말씀을 다시한번 하면서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감사하지 못하는 자들의 종말을 보여줌. 개역성경 민수기 25장에 그들은 말하기를 "하찮은 음식에 지쳤노라"고 불평합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배부르게 먹었던 것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맛난 음식을 찾아 몇십리 몇백리 길을 가고 오랜 시간 기다리면서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부끄럽다고 느끼지 못하는 부끄러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만 들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불평도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행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악행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불신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만 들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원망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제물만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가인과 같은 제사는 받지 않으십니다.

어느 한 쪽의 좋은 것만 보시고 받으시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한쪽의 안 좋은 것도 보시고 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감사란 우리 눈에 보이고 손에 쥐어지는 것만이 아니고, 영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더 감사한 것입니다.

 

김동길교수의 글을 읽어드리며 말씀을 맺습니다.

 

천국에서의 쇼핑 김동길 교수의 글

 

살아가면서 종종 삶에 필요한 것들이 많고 해서 쇼핑을 하러 나섰어요.

우선 사랑이 절실하여,

천국백화점 1층 진열대에 놓여 있는 "사랑"을 캇트에 실었죠.

기쁘고 평화롭게  이웃들과 사는 것이 중요해서,

코너에 있는 "평화"도 실었습니다.

때로는 참지 못할 일도 있을 것 같아 차곡 차곡 쌓여 있는

"오래 참음"도 하나 올렸어요.

또 자비를 베풀 일도 있을 것 같고, 착하고 충성되게 살아야 할 것 같아,

"자비" "양선" "충성"도 충분하게 담았습니다.

부드러우면서 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 "온유"도 담았습니다.

온유까지 싣고 나오는데 아무래도 욕심이 많아 마지막으로 "절제"

한 묶음 실었죠.

이제는 세상에서 얼마든지 행복하고, 넉넉하게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계산대로 가서 너무 많이 사서 비싸겠다는 걱정을 하면서,

계산하는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얼마죠?"

천사는 이 모두가

"공짜"라고 했습니다.

"아니, 이 귀한 모든 것이 다 공짜라구요?"

천사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다 지불하셨거든요."

 

 

이미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에 충분히 채워주셨고, 인도해 주셨고, 인도해 주십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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