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신학 282

빈들에서 산상보훈을 듣는다

빈들에서 산상보훈을 듣는다 가난한 사람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빈들에 오르기를 좋아합니다 약대 털옷을 입고 석청을 먹으며 아침이슬로 마른 입술을 적시는 빈들에서 가난해짐을 배웁니다 주께서 손수 기르시고 거두어 주시는 백합들과 새들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빈들에서 바라봅니다 허허벌판 칼바람 불어오는 그 빈들을 좋아라 합니다 자신을 쳐 복종시킬 수 있는 거룩한 말씀이 빈들의 골짜기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고 버림과 죽어짐의 철학을 그 언덕으로부터 배우며 나의 무거운 죄짐을 십자가에 못박아 골고다 언덕에 세우는 그 빈들을 좋아라 합니다.

광야의 신학 2020.11.27

그래도 광야가 좋은 이유

그래도 광야가 좋은 이유 차라리 광야에 있었더라면 우리 주님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에서 나오는 생수는 마셨을 것입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주저앉았다가 폭삭 망하고 말았습니다 땅은 황무하여졌고 성읍들은 불에 탔으며 토지도 빼앗기고 파괴되고 포도원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징막 같이 겨우 조금 남아 있습니다 차라리 광야였더라면 사막에 피는 꽃도 사막에 강이 흐르는 것도 볼 수가 있었으련만 성한 곳 하나 없이 상한 것과 얻어터진 흔적 뿐입니다 아버지 집을 떠난 탕자가 돼지우리에 들어앉아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는 처량한 모습과도 같습니다 차라리 광야였더라면 구름기둥 불기둥 속에 보호받으며 살 수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광야의 신학 2020.11.27

더러운 것은 묻어버려라

배설학 제1강 더러운 것은 묻어버려라 너의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통할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이켜 그 배설물을 덮을찌니 -신명기 23:13 그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게 땅속에 묻어버리는 것입니다 아까워하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묻어버리는 겁니다 광야의 모래 속에 나의 자아를 나의 자랑할 만한 것을 똥처럼 묻어버리는 겁니다 모세처럼 사람을 죽여서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묻히워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40년 미디안 광야생활은 교만과 자신감이 죽어지고 천하 제일의 온유한 자로 거듭나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은 가져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버릴 때 위대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똥은 품어야 할 것이 아니라 내다 버리고 묻어버려야 하는 더러운 것일 뿐입니다..

광야의 신학 2020.10.03

광야의 신학 -19/ 광야는 기쁨으로 가야 합니다

광야는 기쁨으로 가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길일수록 즐거운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가기 쉬운 넓은 길이라도 불평으로 가면 한발자욱도 가기 싫은 겁니다 광야 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과 원망으로 가다보니 열 하룻길이 사십년 걸려 가게 된 것입니다 광야 길도 마음먹기에 따라 즐거운 소풍이요 행복한 여행길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시험을 당하여도 기뻐하며 즐거워 하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간다면 천년을 하루같은 마음으로 갈 수 있고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는 잠언의 말씀도 기억한다면 그날 그날이 즐거움 뿐입니다 광야는 불평의 길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여행길이 되어야 합니다.

광야의 신학 2020.09.14

광야에 설 때 하나님 말씀 먹는 것을 배운다

광야에 설 때 하나님 말씀 먹는 것을 배운다 세상에서는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 말씀 먹는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세상에서는 너무나 분요하여서 하나님 말씀 먹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세상 분요 가운데 인도하지만 성령께서는 우리를 광야로 내보내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광야에 설 때 배울 수 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영을 살찌우는 비결이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 서야만이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는 바울의 고백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해처럼달처럼/차문환

광야의 신학 2020.09.04

광야 신학-17/ 광야에 설 때 하나님 형상이 돋보입니다

광야에 설 때 하나님 형상이 돋보입니다 앞태가 아름다운 사람이 있고 뒷태가 아름다운 사람이 있습니다 앞태보다 뒷태보다 속태가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십시오 겉사람은 후패하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롭기 때문입니다 앞태보다 뒷태보다 속태보다 영태가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십시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형상을 잃어버리면 짐승만도 못하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소와 나귀만도 못하다고 탄식한 이유입니다 광야의 신학은 다듬고 갈아주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줍니다 광야에 설 때 하나님의 형상이 돋보이는 이유입니다. 해처럼달처럼/차문환

광야의 신학 2020.09.04

광야는 머무는 곳이 아닙니다

광야는 머무는 곳이 아닙니다 광야는 지나가는 곳입니다 잠시 쉬어갈 수는 있으나 머무는 곳이 아닙니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가구 좋은 냉장고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거 오히려 짐만 됩니다 광야는 머무는 곳이 아니라 영원한 집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데라처럼 롯의 아내처럼 머무르려 하지 말고 아브라함처럼 가나안으로 가는 것입니다 야곱처럼 벧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나그네 광야의 길에 옷 두 벌 정도면 되고 전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 나이 만으로 67세 하루 두끼씩만 계산해도 4만 8천9백10 끼니... 양말, 속옷, 겉옷은 셀 수도 없고 장롱과 창고에 쳐박힌 것들도 수두룩••• 내 나그네 광야 길 이만하면 됐지 무엇을 더••• 광야는 지나가는 곳이지 머무는 곳이 아닙니다.

광야의 신학 2020.09.01

광야는 제련소와 같습니다

광야는 제련소와 같습니다 거칠고 모난 돌이 쓰여지려면 정을 맞아야 합니다 순금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용광로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광야에 들어가지 않고 용광로에 들어가지 않고 정금이 되려고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하는 욥의 고백은 그렇게 쉽게 내뱉어지는 말이 아닙니다 가진 재산 모두 잃고 열 자녀를 잃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믿음의 고백은 광야를 지나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우리는 더러운 불순물을 더러운 찌꺼기를 성령의 불로 태워버리고 녹여내기 때문입니다 녹아지는 곳 버려지는 곳 정금으로 만들어지는 곳 바로 광야에 설 때입니다.

광야의 신학 2020.09.01

광야에서 함께 감을 배웁니다

광야에서 함께 감을 배웁니다 멀고도 먼 거칠고 험한 광야는 혼자 갈 수가 없습니다 혼자 가서도 안됩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습니다 머나먼 나그네 길에 동행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행복합니다 70년, 80년, 90년 가야 하는 머나먼 광야 길에 끌어주고 밀어주는 동행이 있으면 갈만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고 홀로 있어 넘어지면 일으켜 줄 자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잡아주고 서로 서빙하는 더불어 함께 가는 법을 광야에서는 배우게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시는 그분의 소리를 광야에 서면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시간은 광야를 걸어갈 때입니다. 허참... 정말이라니까요!?

광야의 신학 2020.08.08

광야의 삶에 소망이 있습니다

광야의 삶에 소망이 있습니다 광야의 삶에 어찌 곤고함이 없겠습니까 어찌 수고로움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이 광야가 최종 목적지가 아님을 알기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누구처럼 목을 매지도 약을 먹지도 않습니다 평탄한 일상의 삶에서는 소망이 없으나 광야의 삶에서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를 벗어나야 한다는, 벗어나면 광명이 있다는 소망을 갖고 힘든 과정을 인내합니다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 준다는 말씀을 부여잡고 광야의 고된 발걸음을 한발자욱씩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광명한 천국 가나안이 기다리고 있기에 이 광야같은 세상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허참... 정말이라니까요!?

광야의 신학 2020.08.08